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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May 13. 2017

안녕하세요 시언입니다


첫글을 발행한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브런치와 함께한 경험 중에는 처음인 것이 많았습니다. 구독자 200명 돌파를 기념하며 글을 올리기도 했었고, 메일로 구독자분들께 팬레터를 받고 혼자 며칠씩 피식거리기도 했습니다. 답글이 달린 글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안드는 글이라도 인생의 걸작을 쓴 듯 뿌듯해지곤 했습니다. 브런치와 함께한 1년은 기꺼이 다시 꾸고 싶만큼 좋았던 꿈이었습니다. 


이 글은 매거진 개편 관련 공지를 위한 것 입니다. 개편 대상 매거진은 '생각하는 스크린''삶의 책갈피' 두 가지 입니다. 꽤 오랫동안 구상하던 개편안이지만, 그때마다 각 매거진의 구독자분들이 늘 눈에 밟혔습니다. 열분도 되지 않는 구독자들이, 저조차도 할 줄 모르는 매거진 구독을 통해 보내주시는 격려는 제게 각별합니다. 해서 매거진 개편전에 구독자분들께 공지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공지를 가장한 1주년 감사 인사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브런치 작가 합격통보를 받은 1년전 어느날, 블로그 컨셉은 뭘로 할거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저는 "책이나 영화 비평? 아님 둘다" 라고 답했습니다. 되돌아온 건 악의없는 비웃음이었습니다. 책은 몰라도 영화는 몇편 보지도 않은 네가 영화 비평이라니. 친어머니께도 우습게 들렸을만큼 저의 영화 비평은 하나의 도전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영화학적 개념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영화광들의 화려한 편에 비하면 제가 본 영화의 수는 남루했습니다. 그러나 사랑받아도 좋을 책과 영화들이 세상엔 너무 많았습니다. 못난 글을 세상에 내놓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일곱번째로 금연을 결심하는 흡연자처럼, 이번 글이 마지막이다 매번 되뇌면서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저는 자주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제 성격 때문일수도 있고, 삶의 특정한 조건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내는 일들도 제겐 심호흡이 요구되는 일일 때가 많았습니다. 약해보이고 싶지 않아 주로 웃었지만 벅찰때가 많았습니다. 삶이 무작위로 흔들릴 때마다 저는 서점을 찾았습니다. 인간 지성의 정수들이 책장마다 빼곡히 포진해 있는 책들의 영토에 드러서면 일말의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이 많은 책들중 한 권, 한 작가쯤은 나와 같은 일로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무수한 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제게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은 퍽 포근했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땐 영화를 봤습니다. 좋은 영화를 감별해낼 안목이 없기에 남들이 좋다는 작품을 닥치는대로 봤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사도>, <버드맨>, <본 투 비 블루>, <인사이드 아웃>, <흐르는 강물처럼>... 불꺼진 방안을 채우는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저는 다른이의 삶에 접속 했습니다. 누구나 가슴 한켠에 뻥 뚫린 구멍 하나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며, 결코 메워지지 않을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애쓴다는 사실을 저는 영화를 통해 배웠습니다. 결국 제게 책과 영화는 더 좋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이었던 셈입니다.


밭을 가는 소처럼 꾸역꾸역 책과 영화 비평을 써내려 갔습니다. 내게 좋았던 것을 남들도 좋아했으면 하는 단순한 욕망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비평 개념에 무지했기에 기존에 아는 것들을 조합해 새로이 보려 노력했습니다. 아는 척 하지말고, 본 것만을 말할 것. 저의 필명 '시언示言'에는 그런 각오가 담겨져 있습니다. 좋은 작품의 울림을 충실히 전하는 나팔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의 브런치와 글이 예상치 못한 사랑을 받으면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구독자의 폭발적인 증가는 주기적으로 글을 써내야 한다는 압으로 이어졌습니다. 책 한권, 영화 한편을 볼 때마다 글을 어떻게 '찍어낼지' 고민했습니다. 브런치팀에서 진행한 무비패스에 선발된 것도 고민의 무게를 더했습니다. 개봉하기 전의 영화를, 그것도 무료로 본다는 점에서 무비패스는 물론 훌륭한 혜택이자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내로 리뷰를 발행해야 한다는 부담은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좋은 영화도 많았지만, 굳이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영화도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지적이고 계산적이어야 하는 비평글 쓰기에 조금은 지쳤던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 개설되는 매거진의 이름은 '흔들리는 당신에게' 입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책과 영화에서 위안을 구했던 기억에 집중하려 합니다. 기존의 두 매거진, '삶의 책갈피()'와 '생각하는 스크린(영화)' 에 수록된 글들 중 삶에 대한 메세지나 교훈을 담은 작품들은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흔들리는 당신에게'로 옮겨질 계획입니다. 반면 무비패스 리뷰를 포함해 작품의 좋고 나쁨을 논증하는 비평글들은 여전히 기존 두 매거진에 발행됩니다. '삶의 책갈피''생각하는 스크린'이 책과 영화에 대한 각각의 비평이라면, 새 매거진 '흔들리는 당신에게'는 제게 크고작은 위안으로 남은 책과 영화들에게 바치는 나름의 헌정사에 가깝습니다. 저처럼 흔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름의 처방을 권한다는 점에서 처방전이 될수도 있겠네요.


간단히 공지만 하겠다고 시작한 글이 또 길어졌습니다. 이렇게 사설이 길어서야 글로 밥벌어 먹기는 글러먹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늘 말을 줄이자 다짐하지만 쉽지 않네요. 언젠가 한번은 구독자 여러분들께 인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조금은 후련하기도 합니다.


큰 사랑을 받아놓고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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