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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May 29. 2017

소설<거의 모든 거짓말>:속이고,속아주는 사랑에 관하여


선과 악, 옳고 그른 것의 경계가 분명한 소설은 지루하다. 선한 건 좋은거고 악한 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우리네 인생이 수학 공식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좋은 소설은 당연하게 여겨져온 것들의 이면을 끈질기게 파헤친다. 좋게 믿어져 온 것들의 위선을 깨고 천시 받던 것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좋은 작품에 대한 카프카의 정의에 동의한다면, 전석순의 <거의 모든 거짓말>은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다.



“이제껏 진실은 과대평가 되어 왔다. 거짓말은 회복할 수 있을만큼 사랑을 병들게 하지만 진실은 사랑을 아예 도려낸다. 모든것을 다 드러낸 관계는 결코 견고하지 않다”
                                                                                      - 『거의 모든 거짓말』, 7p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인 '나'는 심난하다. 1급으로의 진급 평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거짓말을 잘하는 정도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은 요원하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에게 거짓말 자격증 1급은 사회가 보낸 마지막 초대장이다. 1급의 자격요건은 하나,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무는 능력이다.


흔히 진실은 권장되어야 할 선이고 거짓은 인간관계를 망치는 암적인 요소로 치부된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 둘 사이의 신뢰는 깨지고,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공적인 신뢰도는 추락할 것이며, 누구도 다시는 나를 믿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그 어떤 순간에도 진실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념의 견고하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이 모든 부작용을 감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엄마도 그랬을지 몰랐다. 엄마는 아버지가 좀 더 근사한 구라를 쳐주길 바랐던 것 아닐까. 이미 단단하게 굳은 마음도 허물어뜨릴 수 있을만큼 뜨끈하게"
                                                                                     - 『거의 모든 거짓말』, 57p


백화점 사장, 형사, 건물주... 아버지가 자신의 '구라'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와 엄마는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거짓말을 애써 믿어야만 나는 처참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식의 성공 명언은 성공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자들에게나 적용되는 명제다. 신발을 신은채 방을 뒤지는 채권자가 대수롭지 않은 인생들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 아닌 거짓말이다. 이들에겐 내 인생이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필요하다. 설령 그 가능성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버지는 이런 딸의 마음을 알았을까. 소설이 끝날때까지, 그의 엉성한 거짓말은 멈추지 않는다.


진실이 곧 정답은 아니다. 여자친구가 밤을 새워 만들어 준 스웨터의 디자인이 형편없을 때, 며칠째 라면만 먹고있는 내게 아버지가 생활비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때,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이보다 더 마음에 들 수는 없다고 강조하고, 어차피 요새 통 입맛이 없다고 거짓말 한다.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죄책감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조차도 속아넘어 갈때까지 거짓말을 반복한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을 '거짓말'에 담는다.


여전히 거짓말은 나쁘다. 진실과 거짓의 위계는 여전하다. 많은 경우 거짓말은 상대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다. 단지 작가의 시선은 거짓말이 요구되는 사랑의 어떤 순간들을 응시한다. 이를테면 딸의 행복을 바라는 못난 아버지의 허풍 같은 것들.


“그땐 당신의 거짓말이 사랑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하지 못했다”
                                               
                                         - 『거의 모든 거짓말』, 작가의 말 중


인생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언제나 진실하라', '거짓말은 죄악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만큼 매끈하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상, 거짓말을 감수해야 할 순간이 온다. 알면서도 속이고 속아주어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도 당신은 진실한 인생관을 관철할 것인가. 맘편히 전부 털어놓고,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라며 자위할텐가. 내면의 바다를 찍는 젊은 작가의 도끼질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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