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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May 23. 2017

영화 <중경삼림>: 그저 청춘의 이야기


[마크 로스코, 무제, 1949, ⓒ 2015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현대 추상표현주의 화풍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전성기 작품의 대부분을 무제(untitle)’라 명명했다로스코는 작품의 메세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저 느낄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그는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권위적인 해석 아래 획일화 되는 것을 경계했다


 로스코의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의 반응이 유독 극적이라는 것은 미술 전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실이다누군가는 오열하고누군가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페인트를 뒤집어 쓴 사각거울처럼 단조로운 그림 앞에서 관객들은 무엇을 보는가그들 중 왜 어떤 이는 미소 짓또 어떤 이는 무너지는가. 그들이 보는 것이 실은 작품이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은 아닐까.


<중경삼림>은 두 가지 이야기의 병렬이다첫번째 이야기는 두번째 이야기의 서사에 관여하지 않으며그 반대도 아니다왕가위 감독은 두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을 무의미하게 배치함으로서 청춘의 두 가지 단면을 그저 보여준다.


경찰 223의 이야기

경찰 223(금정무 분)은 비극성과 희극성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다그는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당한 후 방황한다헤어진지 한달이 되던 날, 223은 매일 사모아온 파인애플 통조림 30개를 충동적으로 먹어치운다파인애플 절임은 떠난 그의 연인이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마지막 통조림을 욱여넣은 223은 수화기를 든다수신인은 모든 사람이다인연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다른 인연이 시작되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그는 믿고 있다.

[출처=영화 <중경삼림> 캡처]

223이 이처럼 비합리적인 충동에 몸을 맡기는 이유가 뭘까그는 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기다리되누구를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이 고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채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애타게 기다리지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  첫번째 이야기가 그려내는 데생의 제목은 방황이다.


제복경찰 663의 이야기 

홍콩 거리를 순찰하는 제복경찰 663(양조위 분)은 근무가 끝난 후 매일 똑같은 샌드위치를 사 귀가한다넉살좋은 주인의 강권에 못 이겨 다른 메뉴를 사기도 하지만늘 먹던 샌드위치를 함께 사야만 마음이 놓인다샌드위치는 그의 옛 연인이 즐겨먹던 음식이었다


어제와 같은 샌드위치를 들고 663은 현관문을 연다. 방은 그대로다. 해진 걸레는 홍콩 거리의 습기를 머금은 채 창문틀에 걸려있고빼빼 마른 비누는 세면대에 누워있다. 하나 달리진 게 있다면 스튜어디스 제복이 잘 어울리던 그녀가 없다는 것뿐이고, 663은 이 사실을 인정할 자신이 없다

[출처=영화 <중경삼림> 캡처]

한편 샌드위치집 종업원 페이(왕페이 분)는 옛사랑을 기다리는 그가 못마땅하다.  애도로 꽉 짜여진 663의 일상에 그녀가 파고들 틈은 없어 보인다그녀는 663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의 옛사랑이 남긴 물건들을 새것으로 교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663은 자신의 방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비누는 좀 더 뚱뚱해졌을 뿐이고걸레는 좀 더 깨끗해졌을 뿐이다결국 자신의 방이 온통 페이의 물건들로 가득 찰쯤에야 663은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용기를 얻는다그러나 페이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캘리포니아로 떠난 뒤다.


사랑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223과 663의 결은 같다그러나 223이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떠나기를 반복한다면, 663은 어디로든 떠나지 못하는 인간이다올 것만을 향해가는 유목민의 삶이 223의 것이라면, 663의 삶은 매년 새싹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농경의 삶이다


감독은 아둔했던 청춘의 특정한 씬들을 보여줄 뿐이다나의 청춘은 어땠을까. 로스코의 무제’ 앞에서 관객들은 저마다의 자기 자신과 직면했다.  로스코가 관객의 과거를 담는 거울을 만들어냈듯왕가위는 각자의 청춘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 낸 셈이다. <중경삼림>에서 어떤 청춘을 보든그건 이제 관람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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