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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Sep 10. 2017

소설 <몬스터 콜스>: 길었던 성장통의 맺음말

몬스터를 부른 소년


"그래 내 아들."

엄마가 몸을 기울여 코너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착한 아이야. 네가 그렇게 착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구나."

                                                                                    - 소설 『몬스터 콜스』 중    


 코너 오말리는 착한 아이다. 아침 반찬을 투정하지도, 등교 직전까지 학교 숙제를 미뤄두지도 않는다. 혼자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하교 후에는 혼자 숙제를 한 후 잠자리에 든다. 바람난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엄마가 항암 치료의 한가운데서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너는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산타가 울지 않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듯, 착하게만 굴면 엄마를 잃지 않을지도 모른다 코너는 믿었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코너는 공기다. 늘 성실히 그 자리에 머물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공기. 공기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므로 학생들은 그를 마음껏 할퀴고 주먹질한다. 자신의 배에 내리꽂히는 주먹을 느끼면서 코너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맞거나 수모를 당하지 않은 날의 하굣길은 비감(悲感)하다.    


출처 = 유튜브 '한반지의 영화 예고편 처리장' 캡처

'몬스터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울부짖으며 두 주먹으로 집을 쾅 쳤다. 코너의 방 천장이 충격으로 찌그러졌고 벽이 갈라져 커다란 틈이 생겼다.

"소리 지를 테면 질러 봐. 더한 것도 봤으니까."'

코너가 어깨를 으쓱하며,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 『몬스터 콜스』 중    


 밤 12시 07분. 느닷없이 뒷마당에 나타난 몬스터를 코너가 두려워하지 않는 건, 그에겐 삶이 더 괴물처럼 느껴져서다. 몬스터는 오후 12시 07분에만 나타나지만 삶이라는 괴물은 매분매초 살갗에 들러붙어 피를 빤다. 내일도 자신은 공기처럼 교실을 부유할 것이고 엄마는 변기를 붙잡고 삭다 만 음식물을 게워내겠지. 이것이 코너의 삶이었고, 그 삶의 이름은 괴물이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유일해서 다른 것과는 헷갈릴 수 없는 자기만의 상황, 이른바 '인생 상황'이라는 것은 무어라 말해도 절대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

                                                                                             - 아우슈비츠 생존다 장 아메리, 『자유죽음』 26p    


 모든 공감은 반쪽짜리다. 닿고자 내뻗지만 결국 닿을 수 없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이기도 하고 통과해온 경험들의 유별함 때문이기도 하다. "나 지금 슬퍼"라고 화자가 발음할 때 청자는 자신에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서의 "슬픔"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소통되지 않는, 거대하고 구체적인 슬픔이 코너가 사는 집이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예전에 자신을 불렀던(call)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 몬스터의 첫 번째 이야기

산업화 이전, 코너가 살던 집자리는 본디 작은 왕국이었다. 노쇠한 왕이 죽자 어린 왕손을 대신해 왕의 젊은 왕비가 섭정에 올랐다. 왕손이 성장해 왕좌를 요구했지만 왕비는 이를 거부했다. 분노한 왕손은 사랑하는 농부의 딸과 도피한다. 도피 과정에서 농부의 딸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새 왕비의 자객이 한 짓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왕비를 폐위시키고 왕손을 왕으로 추대한다.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듯한 이야기에 코너는 코웃음 친다. 권선징악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왜 바람난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릴 때, 엄마는 홀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 말라가는가.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고 투덜거리려는 순간, 몬스터는 이야기의 숨은 결말을 말한다. 농부의 딸을 죽인 것이 왕비가 아닌 왕손이었다는 것이다. 새 왕비에 대한 분노를 퍼뜨리기 위해, 왕손은 이 악물고 사랑하는 연인을 찔렀다.     


"항상 좋은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 『몬스터 콜스』 91p    

# 몬스터의 두 번째 이야기.


 성격이 까칠했던 약제사가 살았다. 전통 방식으로 약을 조제했던 그는 교회 옆의 주목 나무를 약재로 쓰려했다. 전통 의술을 불신했던 마을 목사는 약제사의 부탁을 거절했고, 전통 약제술의 비합리성에 대해 신도들에게 강론했다. 약제사의 생계는 위태로워 졌다. 얼마 후 목사의 두 딸이 병에 걸린다. 어떤 의사도 목사의 딸을 치료하지 못했다. 절박해진 목사는 약제사를 찾아가 치료를 부탁한다. 약제사는 목사의 청을 거절했고 목사의 두 딸은 숨을 거뒀다.    

 

나쁜 일은 일어난다. 목사의 악의적 설교로 생계가 끊기기도, 목숨처럼 아끼는 가족이 불치병에 걸려 죽기도 한다. 삶의 본질은 부조리이며,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부조리를 끌어안고 숨죽여 우는 일 뿐이라고 몬스터는 말하려는 듯 보였다.

   

 # 몬스터의 세번째 이야기.

 옛날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존재했지만, 누구도 그를 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살아있지 않았다. 유령처럼 대기를 유영하는 삶에 염증이 난 그는 몬스터를 불렀다. 누구도 그를 보지 않았으므로, 보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보이겠지"

몬스터는 해리를 두들겨 패며 계속 말했다.

"이제는 보일거야"

                                                                                                                           - 소설 『몬스터 콜스』 206p    


출처 = 유튜브 'B Man 삐맨' 영상 캡처

 세번째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코너는 자신을 공기 취급하며 학대해온 해리를 짓밟기 시작한다. 코너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해리는 힘없이 나동그라진다. 정말 몬스터에게 맞은 것처럼. 코너는 세번째 이야기를 '분노'로 결말 지었다. 더 이상 착하고 얌전한 아이로 남지 않겠다는 선언을 담아 코너는 해리를 때리고 또 때린다.

 

 소설 <몬스터 콜스>는 성장 소설이다. 벽에 둘러싸인 소년과, 그런 소년을 매일 밤 찾아오는 한 몬스터의 이야기다. 성장 소설의 주인공은 늘 무언가를 잃는다. 이 상실을 두고 헤르만 헤세는 '알'(from.『데미안』)이라고 했고, 김연수는 '불타는 다리'(from.『소설가의 일』)이라고 불렀다. 알처럼 한 때 나의 온 세계였던 것을 깨부숴야 하고, 유년 시절과 연결된 다리가 재가 되는 광경을 직시해야 한다. 가수 벤 폴즈(Ben Flods)가 "It sucks to grow up(성장한다는 건 엿 같은 일이지)"라 말한 것도 그래서다.    

 

 코너의 세상은 부조리다. 엄마는 임종에 이르렀고, 친부는 새로 낳은 아이가 콜록대고 있다며 미국으로 돌아갔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던 산타는 기어이 나타나지 않았다. "난 네가 보이지 않아"라며 코너를 학대하던 해리는 팔, 다리가 부러진 채 병원에 입원중이다.      


"엄마, 엄마를 보내기 싫어요"

"알아 내 아들. 알아"

                                                                                                                                  - 소설 『몬스터 콜스』 중    


엄마의 죽음을 인정한 아들은 간신히 "보낸다"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보낸다"는 말과 함께 코너는 '엄마'로 상징되는 유년 시절과 작별한다. 코너의 등 뒤로 거대한 다리가 불타고 있었다. 길었던 성장통의 맺음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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