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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Sep 28. 2017

소설『82년생 김지영』: 지영씨들을 위한 변론

화 내도 돼요 지영씨


"갓 지은 따듯한 밥을 아버지, 동생, 할머니 순서로 퍼담는 것이 당연했고, 모양이 온전한 두부와 만두와 동그랑땡이 동생 입에 들어가는 동안 언니와 김지영 씨가 부서진 조각들을 먹는 것이 당연했고....(후략)"

                                                                                                                                  -『82년생 김지영』 20p


 어머니는 주부셨다. 나는 주부인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당연한 말을 뭐하러 할까. 나도 당연한 줄 알았다. 대다수의 심리학 서적은 어머니의 따스한 보살핌을 자녀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다.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하고, 여성에겐 모성애가 있으니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는 모 공기업의 선임 연구원이었다. 갓 무역학 석사를 마친 수재셨다. 출근길에 대표 이사와 마주치면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던 이야기는 지금도 어머니의 18번이다. 자꾸만 꺼내보고 싶은 당신의 찬란한 시절이 거기 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려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갓 걸음마를 뗀 내가 달려와 어머니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가지 말라는 말만 반복하며 굵은 눈물을 쏟더란다. 영문을 모르던 어머니는 매일 아침 잠 덜 깬 아들을 이웃집에 맡기며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그 말은 "엄마 금방 올게"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낯선 집 현관문만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렸을 아들이 눈에 선했다. 어머니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엄마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 아래 성장한 건 내가 누린 몇 안되는 복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엄마가 직장에 계속 다녔다면, 엄마는 나쁜 엄마였을까.'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용어가 없던 때였으므로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가 되셨다. 당연한 건, 당연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나 사실 정신과 다니고 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다니지만 정말 미칠 것 같아. 저 사람 내 사진을 본 건가 싶고, 누가 웃으면 나를 비웃는 것 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여직원들 대부분 약 먹고, 상담 받고, 그러고 있어. 정은이는 수면제 먹어서 응급실 갔다왔어"

                                                                                                                             - 『82년생 김지영』 142p


 여자 화장실 변기 칸에는 드릴 크기의 구멍이 많다고 했다. 후배는 그게 시공상 시행착오의 흔적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남자 화장실에는 그런 구멍이 없다고 답했다. 있다해도 인위적인 것은 없었다. 훔쳐보기 위함일까 카메라를 비집어 넣을 공간일까. 가장 내밀한, 내밀할 수 있어야 마땅한 순간을 향해 뚫린 관음의 구멍을 떠올리며 후배들은 진저리쳤다. 맘 놓고 오줌 누고 맘 편히 심야 택시에서 잠드는 나는 말을 아꼈다.  


 『82년생 김지영』은 편파적인 소설이다. 82년, 야간통행금지 조치가 폐지된 해에 태어난 김지영씨에게 사회 역시 편파적이다. 지영씨의 어머니는 그저 숙명이려니 하며 고된 생을 영위했다. 지영씨 어머니가 그 불합리를 알아차렸을 때 당신의 꽃은 떨어진 후였다. 딸만은 그리 살지 않기도 바랐다.


 『82년생 김지영』에서 '82년생'은 경계인을 상징한다. 윗세대와 달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합리하다는 자각은 가졌으나 여전히 그 불합리를 살아내야 하는 세대. 김지영에게 빙의되는 존재들이 전부 여성인 것도 그래서다. 세상이 약자에게 불합리하다면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인의 존재가 요구된다. 변호인 한 사람만은 온전히 우리의 편에서 끝까지 고발하고 투쟁해 줄 것이라는 믿음. 『82년생 김지영』이 여느 문학과 달리 사실에 입각한 기사의 문법을 따르는 것도 그래서다. 이 책은 지영씨들을 위한 변호인의 변론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X린이 사건'등 몇몇 문제적 발언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발화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미러링'은 함무라비 법전의 토대가 된 복수법의 논리를 따르는 듯 보인다. 네가 나를 상처 입혔으니 나도 너희의 팔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직접 보복을 금하는 현대 법치주의 사회에서 권장될 행동은 아니다.  


 남성들은 깨끗하냐고 물어올 때 문제의 논점은 개인으로 전환된다. 남성에 의한 비인륜적 범죄는 해당 범죄자의 인격 문제라는 것이다. 성범죄나 성차별 저지른(혹은 저지를 의도가 있는) 남성은 극소수인데 남성 전체를 예비 범죄자 취급한다며 열을 올린다. 맞다. 소수의 범죄자를 근거로 전체를 매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이 원칙은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남성이 양의 탈을 쓰고 범죄를 저지르듯, 어떤 여성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성차별 해소와는 관계없는 악의적 주장을 편다. '어떤'이들의 문제가 페미니즘 전체의 평가절하로 이어져도 과연 좋은가.


"당신들(언론사)은 우리(시위대)의 초라한 행색만 따지고, 우리가 어디를 왜 가리키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잖아"

                                                                                                                  -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2 중


 결국 '관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들의 시위가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주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잘못됐으면 비판해도 좋다. 그러나 "여성들이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하는 관심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화장실에서 옷을 내리기 전 수상쩍은 물건은 없는지 살펴야 하는 고충,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면 "여자는 이래서 안돼"라는 비아냥을 감내하야 하는 고충. 『82년생 김지영』은 침묵 당해온 여성들의 실상을 고발하는 변호인의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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