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벨 Nov 16. 2020

기억

나쁜 기억 밀어내기

신체는 공황, 즉 공황 상태에서는 평소에도 숨이 가쁘다. 호흡 자체를 조절하기 어렵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있거나,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 이 증상은 훨씬 심각해진다. 습관적으로 한숨을 내뱉게 되며, 가만히 있어도 호흡이 빠르게 오가는 상태가 계속된다. 마치 몸에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대부분 산소 교환 체계의 이상은 없다. 과호흡은 몸의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빼내고 산소를 과도하게 공급한다. 이는 전신의 알칼리증으로 이어진다. -생략-
    심장은 항상 존재감이 느껴질 정도로 심하게 두근거린다. 가슴이 쿵쾅거려 온몸을 흔들고 있는 것 같다. 호흡을 의식적으로 조절하지 않으면 이 증상은 훨씬 심해진다. 숨을 깊게 천천히 쉬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만약 조절하지 않고 마음껏 과호흡을 한다면, 알칼리증이 폭발해 전형적인 공황발작의 증세가 발현되어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

제법 안온한 날들 / 남궁인 _[공황장애]


그날, 동굴의 공기는 굉장히 맑았다. 너무 맑아서 온몸으로 담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공기를 모조리 흡입해 버린 걸까. 내가 쉴 수 있는 숨이 부족했다. 입구와 멀어져 끝도 없는 길을 지나,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길까지 도착하니 숨은 더 부족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입구는 보이지 않고, 끝없는 그 길을 사람들은 줄을 지어 들어갔다. 줄을 지어 들어갔기에 나올만한 통로는 다시없었다.


멀어지는 입구. 사람의 몸이 가까스로 들어갈 만한 통로. 내 뒤로 끝도 없는 사람들의 기다림. 산소가 부족했다. 산소가 너무 많아 부족했다. 너무 많아서 부족해진 산소 때문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많은 산소가 내 목을 옭아맸다. 내 몸의 이상을 느꼈지만. 아이들과 함께 갔던 동굴 속에서 불안감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이 좁은 입구에서 쓰러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건넸더니 다행히도 다시 되돌아 갈 만한 길을 찾아 주었다. 나에겐 악몽 같았다. 그날의 산소가 많은데 산소가 부족해 숨이 쉴 수 없는 느낌은 아직도 가끔 머릿속과 내 피부를 떠나지 않는다.


그날의 경험 이후에 난, 높은 산과 한 없이 깊은 바다가 더욱 무서웠다. 세월호의 사고로 그 많은 불쌍한 아이들을 삼켜 버린 바다의 위력을 나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의 증상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내가 정신병에 걸린 걸까. 내 증상은 함부로 입밖에 꺼내기가 무섭고 힘들었다. 평온한 사람들 안에 혼자 겁을 먹고 무서운 것을 느끼는 나는 비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고, 의사와 작가의 삶으로 의사의 이야기를 기록하신 부분에서 나는 나와 똑같은 증상을 발견했다. ‘공황장애’ 사방이 막힌 공간. 불안과 공포. 산소가 부족한 느낌. 모든 것이 나와 일치했다. 그 증상이 느껴질 때 나는 책을 찾는다. 무엇이든 읽어 과호흡의 증상이 가라앉길 기다린다. 심호흡을 천천히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과호흡으로 발작의 단계까지 가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언질도 없었지만. 나는 잘하고 있었다.


이런 증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딱 한 가지 떠오른 일이 있다. 살아온 모든 날의 공포스러운 순간을 다 그 일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건 아닐까 싶지만 그것보다 나에게 더 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섯일곱 살 쯤으로 기억한다. 자주 꿈에 등장하는 사건이라 꿈 같이 희미한 느낌의 기억들. 우리 집 근처 하나밖에 없는 슈퍼마켓 앞엔  늘 나의 몸집보다 두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입 주변이 검고 매서운 눈빛의 개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슈퍼이고. 두렵지만 쇠사슬이라는 것에 묶여 있기에 매서운 개의 눈빛과 귀청을 뚫을 듯한 짖는 소리도 최대한 모른 척하며 그곳을 드나들었다. 사건이 발생한 어느 날, 개가 짖어대는 그 소리를 최대한 무시한 발길에 나는 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찌나 매섭게 나를 노려 보던지 무서운 마음에 슈퍼 앞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최대한 빠르게 뛰었다. 멀어졌다고 생각한 그 소리는 나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쇠사슬을 끊고 나를 쫒아 오고 있었다. 그렇게 개와 몇 번을 뒹굴다 기억이 사라졌다. 그 뒤로 어른이 된 나의 무릎엔 기다란 상처가 있다. 개에 물려 꿰맨 자국이라고 들었다.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기절을 했었나 보다.


개 짖는 소리. 내 뒤에 누군가 불쑥 나올 것 같은 느낌. 나를 압도하는 크기의 물체.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가끔 개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나 좁은 길을 다니시는 분들은 자신의 개는 항상 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신다. 분명 묶여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나는 쇠사슬을 끊은 어떤 개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개의 크기와 상관없이 나는 개 짖는 소리에 민감하다. ‘월’하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며 머리카락이 쭈삣 선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더 크게 느낀다. 나를 쫓던 개의 소리와 똑같다. 그날의 느낌은 나와 늘 동행한다. 나와 늘 숨 쉰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개에 물려 생존을 오가는 경험과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요즘은 개의 무서움을 알리면 알아서 조심해 주신다. 하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아직도 작은 개의 매서운 눈빛과 목청껏 짖어대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사랑스러운 개를 우선시하신다.


몸이 다 큰 어른이 작은 개를 무서워하고 뒤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큰 건물의 압도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큰 목소리와 큰 모든 것을 무서워하는 꼴이란. 내 모든 사정을 말할 수 없는 입장에 나는 비 정상인이 된다.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엉뚱한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 기분이 집중되면 나는 호흡이 어렵고, 산소가 부족한 느낌을 체험한다. 최대한 집중하지 않고 시선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길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와 화장실과 몇 개의 문을 새것으로 바꾸었다. 닫히는 느낌이 다 달랐다. 이 집에서 제일 작은 공간인 안방 화장실의 문은 유독 꽉 닫혔다. 역시 꽉 닫힌 문에서 손잡이에 힘을 주어 돌리고 나가야 하는 건 나의 세계에서만 힘든 일이었다. 문의 조임을 조절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극복을 해보고 싶었다. 문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충분히 나갈 수 있음을 머릿속에 기억한다. 위안이 될만한 무언가를 찾는다. 문위 쪽 조그맣게 난 투명한 유리창에게 위안을 받는다. 문을 열지 못해 갇혀 버리더라도 저곳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을 만든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유독 꽉 닫힌 그 문을 닫고 사방이 막힌 화장실을 이용한다.


아직 무섭고 어려운 일들이 있다. 정상인 인척 행동해야 하는 모습이 아닌, 정상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몇 년 후 강아지도 입양할 계획이다. 마음에 불안을 주었던 문을 극복한 것처럼. 강아지도 극복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당장이 아닌 몇 년 후인 이유는. 상처 받은 마음을 지닌 강아지에게 행동보다 마음이 먼저 닿길 원해서 이다. 우리의 서툰 사소한 마음과 행동이 이미 상처 받은 강아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린 강아지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강아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계획 중이고 공부 중이다. 이미 경험해버린 장애를. 어렸을 때 받았던 트라우마를 지워냄으로써 극복이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매서운 눈빛에 무서운 감정이 먼저 지만, 상처 받은 강아지의 모습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갓난아이의 백색소음의 기억은 평온함을 주지만, 나의 어릴 적 기억은 하얗고 뾰족하게 드러낸 사나운 개의 기억으로 덮어져 있다. 내보일 수 없는 기억의 조각이라. 누군가의 배려를 바라는 삶을 지향하긴 어렵다. 좋지 않던 기억의 조각이 내 삶을 지배해 버린 것처럼, 좋은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나쁜 기억을 밀어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좋은 기억의 조각을 모아 본다.


작가의 이전글 매일 떡볶이만 먹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