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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Dec 07. 2020

책 속 문장을 담는 주머니

단편 소설. 1

모두 자리에 앉아 그들이 원하는 일에 빠져 있다. 타인과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많은 감정이 소모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비난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그들을 향한 비난을 할 필요도 없다. 필요 없는 말과 글을 쓱쓱 지워 버리면 그만이다. 인간관계는 책으로 배우면 되었고, 연애 또한 책이 일러 주는 방향에 따라 행동하면 되었다.



가슴 안쪽 새하얀 생각 주머니꺼낸다. 작가의 생각을 담은 책의 내용 중 일부의 문장을 핀셋으로  똑 떼어내 새하얀 주머니에 담아 논다. 그 생각이 어디 있는지 머릿속에서 생각이 나면 주머니에 잘 담긴 것이다.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덕분에 내 생각 주머니는 비웠다 넣었다 더 좋은 것을 찾아내는 일에 능숙하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말을 들어도 그것의 내 몫을 찾아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비난의 말의 주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에 쓸데없이 내 감정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지 않는다. 한번 읽으면 그 순간 좋은 책이 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된 듯 하지만, 머릿속에 여러 해를 담아 두며 상황에 맞춰 꺼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 주머니는 책의 좋은 부분을 꺼내서 담아 놓을 수 있기에 필요한 상황에 맞춰 그 책을 읽었던 감정이 되살아 난다. 나를 지켜줄 문장이 생긴 것이다.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기 전 업체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글을 메일로 받았다. 돌려서 깎아내리는 건 이 업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그래 놓고 나를 위해 주는 척,  나에게 쓰는 존칭 만이 유일하게 나를 위한 글인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쓸데없이 감정에 휘둘리진 않는다. 문장의 분류를 하는 직업을 가진 내 가 제일 잘하는 건, 보다 객관적이게 다른 이의 생각을 진입하는 것. 업체의 입장도 충분히 알겠고 이제 내일에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 다짐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작가의 생각이 잔뜩 담긴, 아직 출판이 되지 않은 책이 도착했다.  새 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은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 누구보다 먼저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 잔뜩 설렌다.



보안이 중요한 곳이다. 글이  글자라 빠져나가 작가의 창작의 고통의 노력이 허무해지면  되기에 나는 이곳에서 모든 것에 신중하다. 우선 접착되지 않는 책을 살짝 흔들어 보니 문장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떨어진 문장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 뜨려 지면 곤란하다. 특수한 나의 핀셋은 문장과 단어를 손상이 되지 않게 집어 준다. 문장과 단어들이 난무한 곳에서 작가의 특별한 문장을 하나 찾아 핀셋으로 다른  책상 위에 옮겨 두었다. 다른 이들이 많이 쓰지 않는 금박지를 붙인 특별 문장은 내가 선별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 들이며,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 밖에 간직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비유한 이 문장이 특별해 보였다. 다른 이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줄 특수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문장들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논란이 되지 않기 위해 내 개인적인 주관보단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특별 문장을 많이 가진 책일수록 독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게 된다. 그 특별 문장의 여부를 가리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의 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오늘 찾은 특별 문장은 20개나 되었다. 내일은 다시 그 문장을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주관적이지 않는 냉철함이 나의 일의 지속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는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결제를 올렸던 책이 도착했다. (글자 수 12,943개, 특별 문장 33개) 이렇게 해서 책의 가격이 16,590원으로 메겨졌다. 책을 구매한 독자는 그 책의 문장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 주머니에 담을 수도 있다. 특별한 문장이 많고 글자 수가 많을수록 책을 구매한 독자가 가지는 것들이 많기에 이렇게 글자 수를 꼼꼼히 세어 책의 가격을 메긴다. 시의 경우는 모든 글이 특별 문장 이기에 특수하게 제작된 글자 저울로 무게를 측정한다. 사실 내가 특별하게 여기지 않은 문장이 다른 이에게 특별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은 조금의 논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최대한 동일한 방법으로 글의 무게를 측정하고 냉철하게 따져 보려고 노력한다.



정신이 집중된 고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일의 무게를 가지고 퇴근하지는 않는다. 비워 내는 일에도 능숙하다. 책의 문장으로 버텨내는 삶이긴 해도 그것들이 여러 번 익숙하게 되면 내 것이 되기도 한다. 책과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상처에 더디고 무뎌지는 사회가 된 건 책 속의 문장을 주머니에 담을 수 있게 된 후부터라고 생각된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에 서점으로 향한다. 나의 아이가 태어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부모가 가져야 되는 마음가짐을 알아보고 생각을 담아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앞서 오는 문제들이 딱히 어두운 문제들이 되지 않는 건 책이 있기에 가능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우린 마음이 단단해졌다. 길가에서 서로의 어깨가 부딪혀도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지 않게 된 건 책이 주는 생각이 그 사람 안에 장착이 잘 된 거라 생각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 험악한 사회를 물려주게 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맞다. 어제 나는 감사의 책을 읽고 문장을 생각 속에 꽉꽉 담아 두었었다. 세상이 이렇게 감사하게 보이는 건, 감사의 문장들 때문일 거라. 기분 좋은 웃음이 잔뜩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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