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곧 질이다.
To. 잘하려다가 오히려 마감 기한도 못 맞추고 완성도 제대로 못 시키는 신입사원과 그걸 지켜보는 나에게
처음 하는 일, 익숙하지 않은 일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정과 결과물의 질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 두 가지의 아이디어로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할 때가 있다. 결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낸다. 처음이기 때문이다. 처음은 늘 어렵다. 처음은 혼란스럽고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게임업계에 다닐 때의 일이다.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앱스토어용 아이콘이 필요하다. 보통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아이콘 시안을 4~10개 사이를 만들고 그것을 계속 다듬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히트 게임 아트 디렉터는 달랐다. 하나의 아이콘을 만들기 위해 1,000개 가까이 시안을 뽑도록 시킨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아트디렉터가 한 답변이다.
"창의적인 시안 4~5개를 만드는 것은 쉬워요. 하지만 창의적인 시안 1,000개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일이죠. 처음 4~5개의 시안에 색을 바꾸기 시작해요. 그래도 부족하면 조금씩 모양을 바꾸고, 배경을 바꾸고, 구도를 바꿔요. 1,000개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면 처음에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죠."
아트 디렉터와의 일화는 와튼 스쿨의 최연소 종신교수로 임명된 애덤 그랜트가 쓴 오리지널스(Originals)에서 적힌 내용과 일치한다.
양과 질은 서로 상충관계(tradeoff)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어떤 일을 더 잘하기를 원한다면, 즉 결과물의 질을 높이려면, 다른 일은 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아이디어 창출에서는 양이 질을 예측하는 정확한 지표이다.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변형되거나,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거나, 완전히 실패작인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낸다. 하지만 이는 결코 헛수고가 아니다. 그만큼 재료로 삼을 아이디어,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내게 된다."라고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는 지적한다.
누구나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처음 하는 일에 일정은 정해져 있다 보니 몇 가지 아이디어만 가지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익숙한 일이 아니다 보니 수정할수록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방향으로 수정해 본들 결과가 나아지기는 힘들다.
처음 하는 일이나 익숙하지 않은 일,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할 때는 최대한 많은 양의 결과물을 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질은 신경 쓰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완벽보다 완성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많은 양을 완성하고 실패하는 과정 속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고 성장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질이 높아지게 된다.
질보다 양이다. 그리고 양이 곧 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