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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힘든것이 아니라 언제올지 모르는 행복이 지겨웠다

김애란 작가님의 '비행운'을 읽고

by 일반토마토

나는 성질 급한 사람이다.
성질이 급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없었고, 탁자 위의 마시멜로를 덥석 집어 먹듯이 달큰한 향을 뿜고 있는 젊음의 꽃을 함부러 꺾었다.

어릴 적, "인생 뭐 별거 있냐"를 외치던 내 속에는 그래도 "나는 내 시대의 보통 이상의 무언가가 되겠지"라는 막연함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욕망이 내 능력보다 한 뼘 정도 앞서 있는,
그래서 항상 앞서 있는 행복이 언제 눈앞에 올지 기다리다 지쳐버린,
그저 그런, 혹은 그 이하의 서른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라는 전공서적처럼 두꺼운 벽을 방패 삼아,
요즘 뜬다는 것에 열정이라는 칼을 들고
“행복을 위하여!” 라고 고함치며 달려나간다.

내 앞을 달려가던 선발대 전우들이
현실이라는 쇠뇌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도망친다.

그래도 전장을 한 번쯤 밟아봤다는 자부심을 안고,
떨어진 자존감을 따스히 안아준다.


내게도 꽃이 피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무언가가 지나간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언제였는지조차 가늠이 어렵다.

열매를 맺기 전 꺾여버린 꽃.
그것은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눈부신 청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한 뼘의 차이 정도는, 한 뼘쯤 더 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며 즐긴다.
그저 언제 올지 모르는 행복을 기다리는 일이 지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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