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기록]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를 잠시 멈춰 세웠다. 옅은 먹구름이 가득 찬 하늘 아래 갈대들이 제법 멋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동(立冬)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우리 내외는 가을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찬 공기가 외투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우린 말없이 갈대밭 사이를 한참을 걸었다. 따스한 아내의 체온이 나의 손을 넘어 나의 몸을 데운다. 데워진 몸은 원인 모를 나의 허기를 충만하게 채워주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것이 이런 뜻일 거야-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월요일 아침, 시인 이병률의 에세이집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를 펼쳤다.
그리고 첫 작품을 서너 번 곱씹으며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겼다. ‘손 잡아주지 못해서’라는 제목과 당신의 생일에는 꼭 장갑을 선물하겠다는 작가의 나름의 이유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글을 빌려오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의 생일을 꼭 챙겨주고 싶지만 언제인지 모른다. 생일을 알게 된다면, 그때 꼭 당신이 장갑을 갖고 싶다고 말해줬으면 한다.
나의 맨 처음 생일선물이 꼭 장갑이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의 그 손이 빈 손이 아니었으면 해서, 당신의 시린 손을 내 손을 대신해 덮어주기 위해서다.(후략)
작가의 말처럼 삶을 조각하는 임무는 절대적으로 손이 맡는다. 우리 부부는 손으로 현금을 세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사무실의 손짓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돈을 만지는 손은 늘 거칠다. 그때마다 핸드크림을 두껍게 덧바르는 것이 최선이다. 기계적인 손짓은 지루하며 때로는 버겁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연필을 쥔 손으로 글을 끄적이거나, 커피콩을 만지작거리는 순간을 사랑한다. 손끝의 힘으로 요가 수련을 보다 훌륭하게 해내거나, 꽃을 다듬고 화병에 담는 찰나를 사랑한다. 이때 우리의 손이 값비싼 고된 노동의 대가를 보상받는다.
‘손 잡아주지 못해서’를 마지막으로 읽어내며 아내의 손을 떠올린다. 고생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금방이라도 눈물짓는 손은 다행히 아니다. 다만 희미하게 하얗고 보드랍다는 느낌 외에 구체화되지 않는다. 수개월 동안 잡아왔던 손인데 기억해 내지 못하는 상황이 우습다.
손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아내의 손가락 하나, 손마디 하나가 또렷하게 떠오를 때까지 아내의 손을 관찰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장갑 끼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아내에게 장갑 대신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고민도 잠시, 아내의 귀가 시간에 맞춰 재빨리 쌀을 씻는다. 머리보다 손이 더 먼저 반응하는 남편 9단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