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편지
가끔 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생각해.
그 집에 이사갔던 날, 그 사람을 처음 만난 날, 당신과 헤어진 날.
1년 새 참 많은 일이 있었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그런 일의 주인공이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지금도 어떻게 여기까지 시간이 흘러온건지 잘 모르겠고.
분명 누군가는 시작했을텐데 그게 누구였던가, 누구의 말이었던가, 어떤밤이었던가
그날부터 끝이 예정되어 있던 걸까, 그걸 그 사람도 당신도 어쩌면 나도 느끼고 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온 걸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일이 시작되고 끝나버렸어.
당신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주 가끔은
나에게 좀 더 일찍 아는 시늉을 했더라면
그럼 또 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그런 상상도 해 보고는 해.
부질없는 생각이지.
당신이 나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없듯
나도 그때의 당신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다만 그 마음은 우리가 알고 지낸 모든 시간보다 더 길고 길었을거라 생각해.
어쭙잖고 의미 없는 단어들로 이 공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
혹여 미안하다는 말도 그렇게 느껴질까봐 고민이 되네.
난 당신의 용기를
내가 벌인 일과 다를 바 없는, 그런 가십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부인을 위해 틀었던 그 노래를 가끔 들어.
싱가포르는 어때?
당신도, 거기서 그 노래를 듣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