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편지
이건 도련님께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입니다.
50년 전의 그날로 돌아가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입니다.
도련님,
오늘은 이렇게 눈이 내리지만 그날은 은근한 햇살이 곳곳에 퍼져 있었어요.
나는 작은 방에 도련님을 홀로 두고는 일부러 문을 살짝 열어두었습니다.
분명 도련님도 그걸 아셨을테죠.
그러지 않고서야 도망간 것처럼 문을 활짝 열어두는 일은 하지 않으셨을테니요.
혹여 세 번이나 방을 오가며 도련님의 애를 태운 장난이 불편했던걸까 싶어서 저도 모르게 뛰어갔어요.
떠나버렸으면 어쩌나 겁이 났었거든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며 누워있는 그 눈빛을 보고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되었었군요.
내 방에서 오로지 내것인 공간은
도련님이 선물해준 침대 위 뿐이었어요.
허락받고, 허락할 수 있는 유일한 곳.
나는 거기서 사랑에 빠지고, 평안을 느끼고, 이내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쌓아올린 모든 것이 어느 틈에라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어요.
도련님은 늘 마음속에 내 자리를 마련해두겠다고 했지만
도무지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축복해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음말고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도련님,
50년이 넘게 당신을 기다렸어요.
이젠 모든 사정을 알고 그 얼굴을 보았으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처음엔 날 따라오지 않은 당신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렇게 버텨 낸 삶이었으면 영영 빛이 날 것이지,
젊은 날의 총기는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어버린 그 모습이라니.
미련과 기억과 알 수 없는 자존심으로 뒤섞여버린 당신의 눈동자를 보았으니
난 그걸로 되었습니다.
단역이라도 얻기 위해 성치 않은 걸음으로, 자리 하나 없이 매일 떠도는 것은 당신의 늙어버린 육신인가요?
아니면 나를 향한 마음인가요.
나는 매정하게 떠나버렸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 못 들은 것은 아니에요.
평생을 기다렸는데...
도련님,
우리는 평생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이렇게 저물어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