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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Jan 19. 2021

아무 표정 없이 웃는단 말이야

열네 번째 편지

나 열심히 안 살아.

열심히 안 살고 싶어.

대체 뭘 보고 다들 나한테 같은 말만 하는 거야?

살면서 날 알게된 지 1시간도 안 된 주제에, 뭘 안다고 누구더러 열심히 산다는 거야?

직장 다니면서 주말에 알바하는 게 열심히 사는 거야?

퇴근하고 부랴부랴 책 보고 공부하면 열심히 사는 거야?

그래 만약에 그런거면,

세상에 열심히 안 사는 사람이 어딨어.

자기 밥벌이만 해도 너무너무 대단하고 위대한데, 허투루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해.

나한텐 그런 말 하나도 칭찬으로 안 들려.

열심이라는 두 글자가 언제부터 버둥거리는 삶을 포장하는 낱말이 됐어?

나 사실 안간힘을 써가며 겨우 버텨내고 있단 말이야.

이게 열심이고, 버리지 않은 얄팍한 희망이고, 언젠가 올 좋은 날을 기다리는 마음 같은 거라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아무 표정 없이 웃는단 말이야.

언젠가는 열심히 살았던 적도 있었지.

아직 내 몫의 희망과 좋은 날이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열심히 사는 내 모습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땐 그렇게 살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이제 그 시절은 다 지나갔고

나의 열심도 온통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어.

지금의 나는 열심히 살수록 비참해져.

나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만 살아가고 싶어.

열심이 아닌 여유, 안간힘이 아닌 웃음, 절박함이 아닌 즐거움.

그러니까 나더러 열심히 산다고 말하지마.

애쓰는 나의 삶을 찾아내지마.

당신에겐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선 이미 사라진 그 마음을 부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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