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열아홉 번째 편지
토요일은 원래 낮잠을 자는 날이거든요.
이건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여러 법칙 중의 하나와도 같은 거예요.
안 졸려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내 꿈 속에 그쪽이 나왔어요.
너무 실제 같아서 잠시동안 정신을 못차렸는데 생각해보니 어이없더라고요.
하필 이제와서?
참...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쵸?
꿈 속에서 당신은 무려 우리 본가에 놀러왔어요.
꿈이니까, 앞뒤설명 같은 건 당연히 없죠. 그냥 대뜸 놀러왔어요.
그래서 잠시 앉아있었는데 저녁 6시가 되고 가족들이 하나 둘 귀가하기 시작했죠.
나는 당신을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나갈 채비를 할 테니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했어요.
난 정말 빨리 나가려고 했거든요. 겉옷만 걸쳐입고 다녀오겠다고 인사만 하고.
그런데 자꾸만 뭐가 잘 안됐어요.
식구들과 얘기를 해야했고, 애가 타기도 하다가 웃기도 하다가
뭐 그렇게 계속 어쩌다보니 시간을 지체하게 된 거예요.
이때 나는 부지런히 유난을 떨면서도 한편 그런 생각을 했어요.
너에겐 없는 가정의 따스함이, 어딘가의 일원이라는 안정감이, 실재하는 구성원들이 나에겐 있어.
나빴죠?
이윽고 당신이 우리집 문을 두드렸어요.
당신은 화가 나 있었어요. 추운 겨울날이라 두 뺨은 발갛게 얼었고.
나는 호다닥 밖으로 나갔어요.
아파트 복도를 거닐다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아요.
음, 꿈이었구나. 하기까지 몇 분 정도.
당신이 꿈에 나왔다고? 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고
꿈 속에서의 나의 모습, 태도, 생각마저 곱씹어보니 다시 잠들시간이 됐네요.
나는 이제 왜 당신이 나의 꿈에 나왔는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참, 꿈이나 현실이나 상황에 숨어버리는 비겁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두 번 다시는 당신이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일주일에 단 하루,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