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나무 한 그루나 있었을까
스물한 번째 편지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느 날엔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보셨어.
다들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못했지.
선생님은 얼른 분위기를 읽으시고는
특별히 없겠지만 뭐라도 생각해보세요 -
하면서 같이 웃으셨다. 그러더니
저는 우리학교에 나무가 많은 게 좋습니다.
하셨어.
나는 그전까지 우리학교에 나무가 많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
으레 대학교 교정이라는 건 그런게 아닌가? 싶었지.
그런데 그날 이후로 우리학교가 조금씩 예뻐보이는거야.
넓은 부지에 풀도 많고, 나무 사이마다 오솔길과 산책로가 있고.
나이 든 붉은 담벼락이 계절별로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과 잘 어우러졌어.
집중이 안 되고 딴 생각에 빠져 창문을 바라보는 일도 괜히 우수에 젖은 청춘처럼 보이는,
그런 곳에서 내가 공부를 하고 있었더라.
주변에 이렇게 초록 풀이 많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잘 와닿지 않을거라던 -
선생님의 말 때문에 학교를 유심히 보게 됐어.
덕분에 보잘 것 없는 하루도 종종 따뜻해지고 즐거워졌어.
난 가끔 학교 다니던 때를 떠올려.
그건 대체로 좋은 기억인데, 그 주변엔 늘 나무가 있어.
참 신기하지.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없었더라면 내 기억에 나무 한 그루나 있었을까?
있더래도, 눈치나 챘을까?
무심히 또 무성히 자란 나무와, 소박하지만 고마운 문장. 그런 것들이 유독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