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열대야만 쳐다볼 수밖에
스물두 번째 편지
손발이 뜨거워 잠이 오질 않아.
창문을 몽땅 열어놨는데도 미적지근한 바람조차 없다.
아마 무슨 꿈을 꾸다가 더워서 깬 모양이야.
머릿속에 뭔가가 가득 남아있는데 떠오르는 것도 잊히는 것도 아니라서 죽을 맛이다.
책상을 뒤져 이면지 한 장을 찾아내고 굴러다니던 펜을 들어서 닥치는대로 휘갈겼다.
그림, 그림이었어.
전구 열기조차 피하려고 불도 켜지 않고 축축한 종이에 계속 펜을 놀렸어.
나 그림 못 그리는 거 알지?
덕분에 그리면서 더 스트레스 받는 느낌이었지만
한참 붙들고 있으니까 사람 형태 비스무리한게 잡혔다.
누구인지 모르겠어,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근데 눈동자만은 길길이 살아서 나를 노려본다.
그래, 내내 꿈속에서 나를 보던 그 눈빛이야.
세상에 없는 사람이겠지만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어쩌면 실재하는 사람인데 마치 환상처럼 느껴졌을지 모르는.
그런 사람과 작열하는 내 방의 한가운데에 있어.
둘이라서 더 더운건가? 나는 밤새 창문 너머로 칠흑 같은 열대야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