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편지
벌써 몇 분이 지나도록 애꿎은 펜대만 손에서 굴리고 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종이에 펜을 들어 편지를 쓰냐.
메모도 필요 없이 사진으로 찍는 시대에.
어쩌면 너에게 써내려 갈 글이 두려워 괜히 이렇게 끼적대고 있나보다.
더 쉬운 방법을 택했다면 혹시라도 너에게 모든 걸 터놓게 될까봐서.
아무것도 없는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아무것도 없는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하물며 너에게 어떤 말이라도 걸 수 있겠니.
용기내어 몇 자 적으려다가도 펜이 무거워 자꾸 놓친다.
나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서 펜 하나 들기도 버겁다.
그치만 그런 내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써.
나를 닮아 아무 말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