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ley Feb 05. 2021

나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서 펜 하나 들기도 버겁다

스물네 번째 편지

벌써 몇 분이 지나도록 애꿎은 펜대만 손에서 굴리고 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종이에 펜을 들어 편지를 쓰냐.

메모도 필요 없이 사진으로 찍는 시대에. 

어쩌면 너에게 써내려 갈 글이 두려워 괜히 이렇게 끼적대고 있나보다.

더 쉬운 방법을 택했다면 혹시라도 너에게 모든 걸 터놓게 될까봐서.

아무것도 없는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아무것도 없는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하물며 너에게 어떤 말이라도 걸 수 있겠니.

용기내어 몇 자 적으려다가도 펜이 무거워 자꾸 놓친다.

나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서 펜 하나 들기도 버겁다.

그치만 그런 내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써.

나를 닮아 아무 말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편지를. 

이전 23화 나도 살려고 발버둥쳤을 뿐이라는 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