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살려고 발버둥쳤을 뿐이라는 겁니다
스물세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나의 A, Z, X, M, S.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머릿속이 바빠요.
늘 스스로를 단죄해야만 버틸 수 있거든요.
오늘은 벌써 수년 째 머릿속으로 나 자신을 처형하면서도, 또 다시 같은 죄를 반복하고만 날입니다.
내 마음은 유독 틈이 없어요.
유년기의 마음이 여물지 않은 채로 몸만 자란 버린 어른아이들은 꽤 흔하지만,
나처럼 몸도 자라지 못한 경우는 정말 드물테죠.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나라는 존재만으로 꾸역꾸역 들어 찬 마음속에 다른 이를 집어넣는다니.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않겠어요?
사실은, 한편으로는, 나도 살려고 발버둥쳤을 뿐이라는 겁니다.
죄인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요.
그렇지만 나는 항상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성글고 보잘 것 없는 내 마음을 그대로 보아 준 몇몇 이들 덕분에 여지껏 버텨왔어요.
그러니 당신들을 내친 일은 복덩이를 제 발로 걷어차버린 미련하고 준비 안 된 이의 탓으로 돌려야합니다.
나를 살려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동시에, 나는 더 이상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려 합니다.
이제 모든 기력을 잃었어요. 말 그대로 쇠진해버렸습니다.
어떤 기쁨도, 우울도, 희망도, 좌절도 없어요. 나는 그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줄 일도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죠.
또 그래서, 당신들에게는 더욱 미안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미안할 작정입니다.
나의 A, Z, X, M, S. 지금처럼 나를 잊고 사시되, 어쩌다 떠올라버리거든 많이 욕해주세요.
당신들이 살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