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편지
생각해보면 넌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내 전화를 대신 낚아채 누구와 통화하는지 네 귀로 듣기 전부터도
넌 내가 사랑에 빠져있고, 그 때문에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
그래서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걸 거야.
넌 조금만 집중하면 누구의 목소리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지?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가끔은 네가 부러웠어.
그 사람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거든.
우리는 답도 없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는 법이 없었어.
늘 잠시 타올랐다가 이내 헤어졌고, 그는 잊힐 즈음이면 찾아 와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
그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했어. 가끔은 며칠 씩이나 심통을 내면서도 그렇게 했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부친 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어. 잘해낼 리 없겠지.
너처럼 경청하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 ... 그런 뜻은 아냐.
난 여전히 서투르게 말하고, 그 마음을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네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다시 시작해보려고.
매번 듣던 말인데, 난 어디 말할 곳이 없다.
지난 기억은 흐리게라도 재생할 수 있는데 지난 목소리는 그게 되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