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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Oct 19. 2023

돌고 돌아 백수만 피해가는 돈

퇴사 후 열여섯 번째 목요일

생각해보면 삶의 대부분은 돈과의 전쟁이었다.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떤 물건을 고를 것인가. 이번 주말에 어디를 갈까, 간다면 택시? 버스? 아니 그냥 걸어갈까? 그 모든 결정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이동거리와 투자 시간, 소득을 계산해 가장 경제적인 방식을 택해왔으니 나는 자본주의의 충성스러운 노예다.


퇴사를 결심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여유자금과 고정비, 예비용 자금을 계산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그렇게 쉴 수 있는 기간을 정한 뒤에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일할 때와는 달리 작은 소비 하나에도 머릿속 계산기를 몇 번이나 돌린다.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디데이를 한없이 쳐다본다.

어느 순간부터는 구인 공고를 확인하는 횟수가 늘었다. 채용 시장이 활발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코로나 이후로 늘 얼어 붙어있다는 이 시기에 백수가 되었으니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몫이라 여긴다.


오히려 석 달이 넘어가자 제법 초연해졌다. 돌고 돌아 돈이라는데, 내 돈은 저 멀리서 돌고 있을 뿐인 거겠지. 경제활동이 없으니 당연하다. 언젠가 일을 하게 된다면 다시 나를 스쳐지나갈 것임을 알고 있다.


삶은 의외로 가볍다. 생각보다 훨씬 심플하게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그렇게 많은 물건과 쇼핑, 잦은 외식과 비싼 취미 없이도 재미있게 놀고 먹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없으니 없는대로 잘 지낸다.

10여 년을 쉼없이 일하는 동안은 더 부지런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는데, 요즘은 겁도 없이 평안하다. 좇고 좇기던 어딘가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나왔구나, 싶다.


이렇게 보송한 마음과 생각을 갖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상태로 일발장전, 또 다시 전쟁터에 나가겠지. 나의 오늘이 더욱 '잘' 일하기 위해 쉬었던 시간이 될까봐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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