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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08. 2024

청송 대전사에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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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것 같지 않던 계절도 더디지만 그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     


흐린 날씨와 조금씩 떨어지는 가을비 빗방울로 인해, 저 멀리 속삭이는 이들의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린다.

식사시간이 지나 배고프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당황스러움이 정겹다.

먼 훗날, 저 아이에게 기억도 못할 오늘 하루도 어쩌면 문득 초가을 엄마와 정게 거닐었던 어느 가을비 오는 날이 되어 애틋한 그리움으로 새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움..


그리움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그래,  그리움은 왠지 이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다.     


세상사 모든 것들이 변한다고 하셨다.

석가여래(釋迦如來)는 '모든 것 변한다[諸行無常,제행무상]'고 분명 말씀하셨다.


변화(變化)는 많아지게도 적어지게도 하고, 짙어지게도 옅어지게도 하고, 크게도 작게도 한다.

또 옆에 존재하게도 다 없어지게도 하고, 좋아지게도 싫어지게도 하고, 같아지게도 하고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하여 그리움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세상 일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점점 작은 쪽으로, 흐려지고 옅어져 조금씩 잊히는 게 대부분인 것 같다.

사랑도, 기쁨도, 즐거움 들처럼 각자 나름의 차이나 예외는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조금씩 덜해지고 적어지는 쪽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겉모습과 들이 희미지고, 지고,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더 또렷해지는 것만 같다.


기억도 희미해진 오래전에 좋은 이들과 와보고, 다시 여기 큰 바위 아래 절집에 들어서니 그리움이라는 화두(話頭)가 초가을 시원한 바람 한줄기로 스친다.


이것저것 그리운 것들 생각하며 이른 가을 산들을 따라 머문 곳은 청송 주왕산 대전사(靑松 周王山 大典寺)다.

주왕산 대전사(周王山 大典寺)

큰 바위를 높이 품은 주왕산(周王山) 아래 넉넉한 절집이다.

스치는 인연들을 반갑게 맞아 주는 산아래 아늑한 곳이다.

아 쉴 곳을 아낌없이 주며, 함께 깊어질 가을을 애써 함께 기다려 주는 그런 곳이다.


주왕산(周王山)

산을 오르려는 이에게는 격려를, 내려온 이에게는 작은 휴식을 주면서 말이다.

소식을 전하면, 늘 격려와 휴식을 보내주는 그런 친구처럼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나간다.

 

시절을 놓친 이 계절이 수줍은 듯 조금 더 시원한 바람을 절마당에 쏟아 놓는다.

가을은 좁지 않은 절마당을 느긋하게 물들이고 있다.

좋은 계절을 기다리는 이를 더더욱 애타게 하면서 말이다.


주왕산 대전사(周王山 大典寺)

또 많은 이들이 넉넉한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서로의 일에 대해 묻고 답하고 있다.

일상의 작은 대화들이 더 작은 가을비 여린 빗방울에 가볍게 젖어 끝도 없이 웃으며 이어지고 있다.


한참을 그 은행나무 아래 삥 둘러진 의자에 앉아 보광전(普光殿) 뒤 큰 바위산을 보고 있다.

주왕산 대전사 보광전(周王山 大典寺 普光殿)


그 순간, 늘 그렇듯 그리움은 문득 스치고, 또 길게 이어진다.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리움이라 시간이 지나면 절대적인 그리움의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간다.

유한한 삶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는 늘 조금씩 짧아지고, 과거는 늘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일 거다.


 그리움은 그렇게 과거를 전제로 하기에 늘 아쉬움과 동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릴 수 없는 시간이 그리움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또 그리움은 그리움 자체의 그 크기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 커지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하여,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움은 그 숫자도 또 그 크기도 늘어 커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운 이도 그리운 것들도 그렇게 더 많아지는 게 그래서 인가보다.

주왕산 대전사(周王山 大典寺)

 석가여래께서 모든 것들이 변한다 하셨듯 그리움도 변한다.

변화라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진리라면,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다.     

그리움에 늘 동반되는 아쉬움을 최소화하는 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 커지는 그리움을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또 아쉬움이 없다면 그 그리움에는 애틋함이 줄어 슬퍼질 것 같기도 하다.



마당 넓은 절집 큰 나무 아래 또 한참을 앉아 다시 큰 바위를 올려 본다.

저 바위들 위 하늘에 높은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멋진 가을하늘이 되면 그리운 이들과 다시 와보고 싶다.

그 아래 나무들도 예쁜 가을 색으로 물들면 그리움 하나 더 새겨지겠지만....


좋은 시절의 그리운 이들에게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그때처럼 그렇게 가을이 예쁘게 스쳐 지나려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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