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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Sep 21. 2022

양산 신흥사에서

보속(pe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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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이 지난 절집은 철 지난가을 바다같이 조용하다.


젊은 스님의 독경소리는 크지도 또 작지도 않게 절집 뒷산을 적시고 있다.


여기는 경남 양산 원동 신흥사(梁山 院洞 新興寺)다.


인사차 들른 대광전(大光殿)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께서 이 어둠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 지우시니, 미워 돌아 나와버렸다.. 그래도 여래께서는 내 맘 아시겠지만..


한참을 산신각에서 멍하니 절마당을 내려보니 더 높은 곳에서 큰 새소리 절집을 깨우네, 미물도 그 큰 뜻을 깨달았으려나..


한참을 멍하니 여래의 미소에 빠져들 때, 절마당을 가득 채우던 젊은 독경소리도 멈추고, 산새 소리마저 조용해지니, 내가 조는지 여래가 조는지 긴 고요가 흐른다.


이제는 나처럼 중년의 신부님이 된 내 옛 친구 바오로 신부에게 처음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하던 날 고해소(告解所)에서 속삭이듯 내게 주던 보속<補贖,penance>.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조금씩만 쌓고 조금씩만 내려놓고 살아보라'고 했었는데, 이 절집이 그렇게 크지도 또 그렇게 작지도 않아 위로가 된다.


역시 진리는 통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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