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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01. 2022

울산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에서

 여래여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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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 년 세월 동안 수많은 민초들의 크고 또 작은 소원들을 듣고 또 들어주기 위해 큰 바위에 새겨진 그 잘 생겼던 얼굴은 심하게 얽었다.

하늘거리던 옷자락은 거친 바위이끼들과 비바람에 짓이겨져 있다.


세상을 구하려고 들고 있는 작은 약병.

그 약병을 든 손마저도 애절하고 힘겹게 들리는 늙은 독경만큼 희미해져 있다.


어물동마애여래좌상(於勿洞磨崖如來坐像,울산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여기는 울산에 있는 어물동마애여래좌상(於勿洞磨崖如來坐像)이 계신 곳이다.


수 백 년 전,

이 큰 바위에 부리 부리한 눈, 넉넉하게 벌어진 어깨, 쳐다만 봐도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질 듯 한 미소를 가진 약사여래(藥師如來)를 새겼다.

그 양 옆으로 해와 달을 억겁(億劫)의 세월 동안 한 번도 쉬게 하지 않고, 밤낮으로 사부대중을  돌봐주게 한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새겼다.


그날 그 이름 모를 석공의 가슴 터질 듯 뿌듯했을 그 시간으로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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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절로 뚝뚝 떨어지는 도토리에 놀라 다시 돌아온 시간.

여전히 늙고 낮은 독경은 토요일 오후 마애여래(磨崖如來)를 감싸고 있다.


슬프도록 힘이 빠지고 이제는 그림자처럼 보이는 여래(如來)와 보살(菩薩)들의 모습에 내 마음도 힘들어진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그 오랜 시절 동안 들었을 말 못 할 소원과 사연에 여래께서도 지치셨나 보다.

늙어가시나 보다.


힘겹게 올라온 제법 많은 계단을 굳이 다시 내려가 차에 있던 박카스 한병 여래께 바친다.

그래도 꼭 힘내시라 인사 전한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그 옛날 그 한 없이 뿌듯했을 석공의 작은 발자국들을 되짚어 밟아본다.


여래여 힘내시라!!


힘내시고 앞으로 또 억겁의 세월,

힘들고 아픈 이에게 용기를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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