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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Nov 05. 2022

밀양 만어사에서

바위가 전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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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귀가 조금 멍멍해질 정도 높이에 올라왔는데.


산이라는 게 늘 그렇듯 주위는 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는 그저 늘 보는 그런 산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엄청나게 크고 검은 바위들이 셀 수 없이 띠를 형성해서 끝도 없이 아래로 연결되어있었다. 

산 꼭대기에서 산 밑 끝까지, 어쩌면 저 먼바다까지 연결된 것 같기도 하고.

한 가지 이상한 건, 산에서 굴러 내려간다는 느낌보다는 이곳으로 꼭 올라가겠다고 대열 지어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포개져서 올라오고 있다는 거다.

바닷가에 무리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처럼.


그래 여기는 크고 작은 물고기 같은 바위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밀양 만어사(密陽 萬魚寺)다.


가야국(伽倻國)의 수로왕(首露王)이 세웠다는 이천 년이 다 되어가는 고찰이다.

절집 앞으로 올라오는 수많은 바위들이 말 그대로 장관을 이룬다.


어쩜 만()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큰 바위들이 큰 강물처럼 줄 지어 있다.

만어사 경석(萬魚寺 磬石)

전설에 의하면 동해바다 용왕의 아들이 나이가 들어 수명을 다할 즈음 스님께 앞날에 대한 길을 물어 그 스님의 조언대로 이곳 만어사로 길을 떠날 때 바다 물고기들도 함께 왔다고 한다.


그 용왕의 아들은 이곳에서 미륵바위가 되었고, 그 물고기들은 이렇게 검고 큰 돌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들이 어쩌면 판타지 소설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여기 서서 미륵바위를 향해 줄줄이 산 쪽으로 올라오는듯한  수많은 바위들을 본다면 이건 전설이 아니라 그저 인정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 것이다.


이들은 경석(磬石)이라고 하며, 경쇠라는 종같이 생긴 악기소리가 난다고 해서 두드리는 이들이 있어 들어보니 정말 바위보다는 투명한 목탁소리 같기도 하고 종소리  같기도 한 소리들렸다.


그 돌들 맨 위쪽에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쉬고 있는 아주 큰 미륵 바위가 전각(殿閣)에 모셔져 있었다.

미륵바위를 모신 전각

미륵바위 바로 , 바위들 중 위쪽 앞쪽 바위에 앉아 아득하게 먼 낙동강과 높고 낮은 산들을 굽어본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은 하늘색이라기보다 푸른 바 빛으로 칠해 놓아 금방이라도 바위 위에 쏟아질 듯, 그래서 이 바위들이 다시 살아 퍼덕거릴 것만 같았다.


이곳은 운해(雲海)가 유명(그래 구름의 하늘이 아니라 구름의 바다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이 바위들은 어쩌면 진짜 물고기들이 변한 게 맞을 수도...)하다는데,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라서 아쉽기도 하고, 오히려 더 신비스럽기도 하다


그래 구름 한점도 허락하지 않는 게, 가끔은 고향 바닷물이 간절히 그리웠나 보다 이렇게 가슴 서늘할 정도의 푸른 하늘을 그려놓은걸 보면..


그래도 이 바위들은 아니 이 물고기들은 행복해 보였다.

이곳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는데도 고개를 들고 연신 미륵바위 쪽으로 눈길을 떼지 않고 조용히 쉬고 있었다.


언젠가 미륵불(彌勒佛)이 미래의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다 구제하게 되면 이 물고기 바위들도 다시 그들의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려나.

그때까지 또 얼마의 세월 동안 쉬고 있으려나.


그 바위들은 그렇게 미륵바위를 믿고 억겁(億劫)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천 년 그 긴 세월을 찰나(刹那)로 느끼게 만드는 이 수많은 경석들의 여유로움이,  미륵바위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맑은 타격 소리만큼 머릿속 상념들을 가볍게 만든다.


수많은 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돌만큼 바위만큼 단순하게 생각들이 정리되어서 좋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이 발목 잡을 때 수많은 돌들을 보며 머리를,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그런 곳인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가슴이 맑아져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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