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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29. 2022

울산 문수사에서

한 발짝만 물러나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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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산자락의 높은 곳에 자리 잡아 자동차로도 한참을 올라야 하는 곳이다.


부지런한 등산객은 기쁨에 벅찬 웃음을 띠며, 자동차로 힘들게 올라온 나와 함께 도착하니,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저 멀리 산 아래 희미한 도시 모습으로 눈을 돌려버렸다.

참 높은 곳에 자리 잡아, 세상 그 소중하고 크고 귀한 유혹과 걱정들을 모조리 작고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멀리 보지 않아도, 단지 한 발짝만 물러서서 봐도 다 이해할 수 있고 편안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알려 주었건만, 그 뜻을 이해 못 한 어리섞은 나는 굳이 이 높은 곳에 와서야 그 지만 소중한 삶을 지혜를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된다.


그래도 여기, 문수보살이 틀림없는 호피 무늬가 멋진 고양이가 제일 먼저 반기신다.


여기는 울산 문수사(文殊寺)다.

토요일 오후 3시의 절집은 고요하다.


속세에 찌든 온갖 잡념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잠시 잊을 수는 있게 해 주니 좋다.

어쩌면  허튼 생각은 아무것도 없으니 잘 추슬러 또 열심히 살아보라고 말없이 내게 전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인연이 많은 곳가 보다.

문수보살의 이름을 빌린 문수사라고 이름 지어진 곳이다.

신라 천년의 마지막을 함께 경순왕과 문수보살과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아주 오래된 절집이다.


신라  마지막 경순왕이 두 왕자와 함께 국운이 다 해가는 신라를 위해 지혜를 얻고자 문수사로 가는 길에 왠 동자승 하나 "어디를 그리 가시는지?"라고 물었다 한다.

왕 일행은 "문수보살께 큰 가르침을 받으러 가고 있다." 고 하자 , 그 동자승 "그럼 따라 오시라."  하여 따라 가는데,  울산 삼호동의 태화강을 건너자 그 동자승 온데 간데없었다고 한다.

간 곳을 모르고 흔적도 없어 그 지역을 현재까지 무거동(無去洞)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래서 3번을 애타게 부르다 결국 탄식하고 고려에 항복하고 마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순왕이 할 수 없다고 탄식한 자리는 헐수정이라 하여 지금은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동자승은 늘 그렇듯 문수보살이 틀림없고, 경순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떠난 것인데 많이 안타깝긴 하다만, 역사는 원래 그런 것 같다.


경순왕을 데리고 여기 문수사까지 왔었다면, 그래서 그 지혜를 얻었다면 고려는 없었을 거고 신라는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대한민국의 영문은  Korea 가 아니고 Silla 뭐 이런 것이었을까?

K pop은 S pop으로...


왜 문수보살께서는 경순왕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때 이르게 떨어지는 단풍 속 낙엽 한 조각처럼 허무해진다.


다시 주위가 고요하다.


잡념이 스친 머리를 쓸어내리고 절집 주위를 둘러본다.

그렇게 큰 절은 아니지만 절벽에 지어진 모습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도 이곳이 범상치만은 않은 곳이라 여겨졌다.


나는 높은 곳에 올라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이곳처럼 조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지니 여기가 참 좋긴 한데, 여전히 낮은 곳에서 아파서 조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야 하는 내 모습이, 내 영혼이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있기에 지금의 고요와 평온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고마워할 수 있어 그걸로 충분하다.


조금은 멀리서, 아니 한 발 떨어져서 여유를 가지고 보기로 했다.


조금씩 오기 시작하는 노안도 너무 가까이서 보지 말고 이제 조금만 떨어져서 여유를 가지라고 자연의 현명한 지혜를 내게 전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운의 경순왕과는 달리 나는 고양이로 화한 문수보살을 따라 여기 문수사에 도달하여 또 살아가는 소중한 지혜를 얻고, 한창 곱게 물든 단풍의 배웅을 받으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무겁고 소중한 깨달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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