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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23. 2022

울산 백양사에서

일상의 큰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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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넉넉하다.


큰 맘을 먹고 가야 하는 그런 절집이 아니다.

넓은 주차장이 밖에 굳이 있지만, 절집 안으로 차를 몰고 갈 수 있다.

도심에서 마음만 먹으면 일본의 신사(神社)들처럼  점심시간에도 와 볼 수 있는 곳이다.

절 주위에도 많은 여염집들이 있어 낯선 느낌도 없다.  

그래서 제법 큰 규모의 절집이지만 그 크기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은 넉넉함으로 다가와 절 입구부터 편안해진다.

단숨에 곧바로 대웅전에 인사드릴 수 있어 좋다.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산사는 그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어 그곳에 자리 잡았겠지만, 자동차마저 닿지 않는 곳은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기회가 없어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러하기에 이곳은 참 고맙고 넉넉한 절집이 맞다.

그 여유로움이 좋다.


여기는 울산광역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백양사(白陽寺)다.


신라 말기에 세워진 고찰이지만 천년 세월 동안 몇 번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대웅전에 인사드리고, 108개 정도 되는 계단을 올라 전망 좋은 산신각에 이르니 울산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이곳도 예전에는 꽤 깊은 산속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숭유(抑佛崇儒)를 추구했던 조선이 이렇게 도심에 가까운 절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 같기에 여기는 분명 산 깊은 곳이었을게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은 이곳도 주위가 다 개발되다 보니 시내가 되었지만 말이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본 파리 시내도 멋지지만, 저녁놀이 살포시 스며들고,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시간에, 저 멀리 산 그림자도 곁들여진 여기 도심의 라인도 예쁘다.

멋진 파리 시내는 산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낯설어했었다.

나는 넉넉하게 산도, 하늘도, 그 하늘에 구름마저도 없으면 허전해지는지, 지금이 훨씬 편안하고 느긋하다.


공원 같은 절집에서 새소리 물소리보다 낮은 음의 익숙한 도심 속 차 소리와 저 멀리 웅성거리는 듯한 사람들 소리가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신경도 쓰지 못한 소리들이  일상에서 얼마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들린다.

내 일상의 한 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굳이 예민해질 필요까지는 없지만 가끔씩은 이런 일상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어 보인다.

내 일상에도 나를 위해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내 진료실은 언제나 아침이면 완벽하게 청소되고  정리 정돈된다는 걸 참 둔하게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당연히 아침이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날  박카스 한 통과 고맙다는  짧은 메모 한 장을 올리고 퇴근했더니, 그 다음날 하루 종일 처음 보는 청소하시는 분들로부터 계속 환한 웃음과 함께 고맙게 잘 마셨다는 인사를 받았다.

고작 박카스 한통이었는데, 참 무심하게도 살았다는 생각에 한심하기까지 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알면서도 내가 받고 있는 고마운 혜택을 당연한 권리인양 지금까지 한 번도 고마움조차 없었다는 게....


저 멀리 도심의 웅웅 거리는 소리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주변 누군가에게 행한 작은 배려는 정말 큰 미소로 내게 한참을 돌아오고 있다.


내일 아침도 내 진료실은 완벽하게 새로운 곳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분들도 더 미소 짓게 될 것 같다.


대웅전에 밝힌 향이 다 타도록 앉아 있다가 도심의 불빛들이 더 많이 켜질 때 인사하고 돌아왔다.


짧은 노을도 도심 불빛의 화려함에 지워져 버렸지만,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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