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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18. 2022

경주 보리사에서

천년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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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생기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힘드신지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대한민국 보물)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감내해야 할 중생의 고통을 대신 지기라도 하실 듯 힘들지만 내게 말하라고 들어주겠다고, 가만히 보지 않으면 느낄 수도 없을 정도의 조용한 미소가 애잔해진다.


그래 '애처롭고 애틋하다'로 풀이되는 순우리말 '애잔하다'가 딱 어울리는 여래이신 것 같다.


천년의 세월 동안 감히 누구 하나 손대지 못하게 힘이 아닌 미소로 광배(光背)며 대좌(臺座) 모두 그 길고 힘겨운 세월을 온전히 보존하며 계셨나 보다.


아직도 들어주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고 하시며, 계속 천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앉아 계시는 걸 보면 애처롭고 애틋해하시는 게 맞다.


말하시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차가운 돌 속에서도 온기가 느껴진다.

그 조용한 미소만으로도, 그 지긋한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게 만든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그 미소와 닮았다.


하지만, 박물관에 갇혀서 수많은 이로 인한 그 혼잡하고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연신 그 은은한 미소를 보내주던 모나리자의 가슴 벅차게 애잔했던 기억, 복잡하고 혼란 속에서 잠시  쳐다보기조차 힘겨웠던 그 미소가 아니라, 속세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히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마주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여겨졌다.


여기는 경주 남산 자락에 있는 보리사(菩提寺)이다.


늘 그 자리에 한 없이 잘 생긴 부처님이 지긋이 내려다보시는 시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무슨 근심과 걱정이 있는지 다 아시고 내게 먼저 말을 건네시고 걱정 말라며 미소 보내시는 것 같다.


먼 훗날.....


또 천년이 흘러 이 자리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위안받을 이에게, 나도 여기서 많은 용기 얻어 갔었다고 꼭 전해 달라 여래(如來)께 부탁드렸다.

년 전 신라사람의 부탁을 고스란히 내게 해 주신 것처럼 말이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가 않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가 이토록 힘든 것이었는지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여전히 내게 보내는 미소는 변함이 없으시다.


천년 전 그날처럼....









   대한민국 보물 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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