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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17. 2022

울산 용안사에서

미소 (微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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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깊이 들어가는 절도 아니다.

긴 비탈을 내려가는 그런 절도 아니다.

평평하게 내 눈높이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공원 같은 절집이다.


가뿐 숨도 찌릿한 허벅지 통증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나와 이곳 절집과 이곳을 둘러싼 공기에 집중할 수 있게 그저 짧은 걸음으로도 반갑게 맞아 주는 크지 않은 절집이다.

큰 마을을 많이 벗어나질 않아서 큰맘 먹지 않고도 올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여행에서 본 일본 신사(神社)들이 도심 어디에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고, 짧은 점심시간에도 도심 속 공원 같은 신사에 잠시 들러 인사하고 가는 모습이 종교를 떠나 그 여유로움이 보기 았다.


짧지만 조용한 나무 사잇길과 조그만 연못을 지나니, 웅장한 느낌을 잘 살린 다포식 공포(多包式 栱包)에 한층 멋을 낸 팔작지붕, 화려한 금단청의 대웅전이 맞아준다.

울산 용안사 대웅전

여기는 울산광역시 온산에 있는 용안사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길을 걸어오다가 대웅전이 보여주는 화려함의 반전이 재미있다.

대웅전 안 여래는 속세의 무슨 소원도 다 들어주실 거라 '대웅전은 이 정도 되어야 할 것 같지 않니?' 하고 당당하게 되묻고 있는 듯하기도 해서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대웅전 옆문으로 발길을 돌리니, 이국적인 귀여운 꼬마 소녀가 반갑다고 예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해주고 있어 잠시 멈칫했다가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웃고 말았다.

꼬마 소녀의 미소

다포식 공포에 팔작지붕, 금단청의 주눅들만큼의 화려함과 엄숙함 속에 이런 반전을 만들어 놓고 미소 지었을 이 절집 스님의 여유로움이 고맙게 느껴진다.


웅전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멀찍이 앉아 한참을 그 꼬마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하루에 얼마나 웃고 있을까?' 일상을 크고 작은 긴장 속에서 살다 보니 정말 우습게도 웃는 횟수가 거의 없었다.

저런 작은 여유도 없이 일상을 살아왔나 보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들어선 대웅전 안 여래께서도 문 밖 그 꼬마 소녀처럼 또다시 내게 미소 짓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그 미소따라 계속 미소 지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미소.


그 미소를 조금이라도 닮아 보려고 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미소 짓게 하고 싶고, 또 미소 짓고 싶어졌다.


절집을 나서는 작은 연못과 나무들이 가득한 길을 연신 미소 지으며 걸어 내려왔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꼭 나를 위해 미소 지어야겠다.

또 누군가를 위해 미소 지어야겠다.


그 꼬마 소녀의 미소처럼.

대웅전 안 여래의 미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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