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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08. 2022

울산 동축사에서

오랜 안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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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산중에 있는 절집은 한바탕 허벅지를 쥐어짜게 만들고, 바람도 서늘한 가을날, 속세에 수많은 번뇌를 털어내려는 듯 땀을 부추긴다.


제법 높은 경사로 이리저리 둘러 내치니 운동이라고는 폰에 글 쓰는 손가락 운동밖에 하지 않는 나는 그냥 힘들고 숨이 찬다.


한참을 오르니 보일 듯 말 듯 배부른 가을 다람쥐 두 마리가 쌍으로 각자 맡은 구역이 있는 듯 절집까지 산길을 차례차례 안내한다.

소임을 다한 듯 다람쥐들이 사라질 즈음,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이 눈앞에 나타난다.


분명 굽이굽이 고갯길에 내 번뇌도 다 털어 낸 듯한데도 또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속세의 거친 욕을 꼭 보겠다는 듯....

한 계단, 한 계단 짚을 때마다 나오는 염불인지 신음 인지도 모를 만큼 힘겨워질 때에 작고 예쁜 절집이 반긴다.


이러려고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구나.


그래 여기는 울산의 오래된 절집 동축(東竺寺).


작은 석탑은 작은 절집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지만 없었다면 허전했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있어야 할 곳을 아는 석탑이 정겹다.

동축사(東竺寺)

인도 최초의 통일왕조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아소카왕이 서축(西竺)인 인도에서 동축(東竺)인 이곳 땅에 황금, 황철을 보낸 인연으로 만들어졌다는 절집이다.

인연은 이렇게도 연결되고 있어 신기하다.


여기 산속에서 전혀 연결될 거라 생각되지 않는 오래된 인도의 왕 이름을 나 같은 범인(凡人)도 대뇌이는 걸 보니 말이다.

동축사(東竺寺)


절 주위에 평범하지 않은 바위들이 보이고, 관일대(觀日臺)라는 이름처럼 동해바다의 해를 한가득 차지할 수 있어 좋다.


부상효채(扶桑曉彩 해 뜨는 동쪽 바다에 있다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신성한 나무)라고 쓰여 있는 두꺼비 바위에 올라 한참을 앉아 동해바다 수평선에 눈을 맞추는 호사를 누렸다.


그 옛날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도 남을 풍경을 여전히 아끼지 않고 내게도 보여주고 있다.

扶桑曉彩(부상효채,해 뜨는 동쪽 바다에 있다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신성한 나무)

서쪽의 부처님 나라에서 이곳 동쪽의 부처님 나라에 보내는 천년이 넘은 안부 인사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으니 그 속에 함께 하 있는 나도 왠지 고마워진다.

동축사(東竺寺)에서 바라 본 울산 현대중공업

내려오는 길, 추운 겨울에 쓰던 모자인 휘양(揮揚)을 쓴 어여쁜 여인이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고 계시는지는 묻지 않았다.

휘양(揮揚)바위

대웅보전에 계신 여래와 보살께 가벼운 인사드리고, 돌아 내려오는 계단 끝에서 아까 본 그 다람쥐 한 마리 무심히 서 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듯 소리도 없이 가버렸다.

저 산 위 절집의 천년 인연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눈은 한번 마주치고 가야 하는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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