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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Mar 12. 2023

청라언덕에서

동무생각


인터넷이 없던 시절 무언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 난감해진다.

가까이 국어사전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조금 지나다 보면 사전이 옆에 있어도 다른 수많은 궁금증을 해결하려다 보면 또 정작 찾으려고 했던 그 어려운 말이 또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청라언덕'


내게는 막내딸 나이쯤에 배운 '동무생각'의 가사 속 이 청라언덕이 끝끝내 해결되지 못한 단어였다.


                       思友(동무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李殷相) 작사, 박태준(朴泰俊) 작곡



초봄, 토요일 저녁 심한 목감기로 거친 기침과 콧물로 1세대 항히스타민제의 복용 후 강력한 졸음에 평소보다 일찍 잠들어 버리니, 일요일 새벽을 고스란히 선물 받게 되었다.

괜히 나 때문에 덩달아 잠 깨버린 강아지 쿠키를 달래고, 혹 아내의 일요일 단잠을 깨울까 조심히 나오니, 갑자기 청라언덕이 가고 싶어졌다.


그것도 이 설레는 봄에.


새벽어둠이 걷히니 어제처럼 오늘도 세상이 희뿌연 미세먼지로 덮여있다.  

기침과 목은 어제보다 더 아프지만 내비게이션에 '청라언덕'을 치는 내 손가락만은 설렘인지 미열 때문인지 떨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도 분명 있었는데, 아직은 비가 오지 않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온 여기는 대구광역시에 있는 이름도 예쁜 청라언덕이다.

청라(靑蘿)언덕

그냥 노랫말 속에 있는 언덕이라고 생각하고, 내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넓이의 벌판 언덕을 그릴 때도 있고, 높은 구름이 따뜻한 햇볕을 거슬리지 않게 가리고, 구름그림자가 옅게 드리운 작은 꽃들이 가득한 언덕을 그릴 때도 있었다.

아무렴 어떠리, 그런 청라언덕을 나는 간다.


노랫말의 제목이 思友(사우)다.

동무생각...


멋지다.


친구가 그립다도 아니고 보고 싶다도 아닌 생각한다라니, 정말 멋지다.

그리움도, 보고 싶음도 다 들어있는 정확히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의료박물관(선교사 챔니스 주택)

청라언덕의 일요일 아침은 참 조용하다.

그리고 아담하지만 세련된 모습이다.

차분한 일요일 이른 아침 같은 곳이다.

서서히 물러나는 겨울을 조용히 보내주며,  한껏 설레는 새로운 봄을 그렇게 차분히 맞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저 멀리 뿌연 안개마저도 조용함과 차분함을 도와주고 있다.


100여 년 전 선교사들의 집과 지금은 의료박물관, 선교박물관 등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 더더욱 차분하게 앉아 글도 노래도 흥얼거리게 한다.

미열 또한 한층 더 차분하게 만드니 그리 힘든 줄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선교박물관(선교사 스윗즈 주택)

이름처럼 푸른 담쟁이(靑蘿)들이 이 붉은 벽돌집을 둘러쌓고 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여름에 그 모습을 보러 한 번 더 와야겠다.


지나가는 이들은 한결같이 흥얼거리고 있다.


동무생각이 쓰여있노랫말 돌을 그냥 읽는 이 가 없다.

전부 노래하면서 읽고 있다.


여기 오면 지금 친구생각나겠지만, 다들 어릴 때 함께 했던 그 친구를 꼭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노랫말 속의 백합은 아니지만  하얀 목련이 이제 봄 이라며 이른 봄 향기를 전하고 있다.

그 향기를 보며, 계속 몇 번을 흥얼거려도 지겹지 않은 옛 동무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3.1 만세운동계단

태극기가 예쁘게 꽂혀있는 아주 오래된 계단을 내려오니, 더 오래되어 보이는 멋진 성당이 가슴 벅차게 기다리고 있다.

대구 계산동 성당

오늘은 옛 친구에게 전화라도 해야겠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실없다고 웃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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