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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Sep 21. 2022

울산 현불사에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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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지만 생각이 또 생각을 낳고, 여전히 생각에 어지러워지면 정해진 곳 없이 떠나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하는 크고 또 작은 절집들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늘 별로 오래가지도 않고 또 부담스럽지도 않은 미미한 솜털 같은 위안을 준다.

  
그것으로 난 괜찮다.
아니 그 정도면 됐다.

머릿속 잡념에 멍해질 때쯤 만난 현불사는 언젠가 만난 외로운 구름(孤雲)이라는 고운사에서 느낀 청량함과는 또 다른 애틋함이 있다.

지치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스쳐 지나간 시간의 무겁도록 소중한 흔적들이 여기 현불사에서 알 수 없는 애틋함으로 스친다.

그리움이니 아쉬움이니 그런 저렴한 의식의 흐름이 오늘은 유독 간절해지니 지치긴 정말 지쳤나 보다.  


절집 크기만큼의 낮은 독경이 더욱 슬피 들림은 억만 겁의 수레바퀴가 돌아야 함(輪廻)을 알지 못함인지 아니면 너무 잘 알기 때문인지 어지럽기만 하다.

꼭 위안을 받으려고 온건 아니다.
그래 이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아니 거짓말이다.
작음으로 해서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 내게도 또 너에게도 솜털 같은 작은 위안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한데, 뭐가 그리도 많은 말을 해주려 했었던 건지.

가끔씩은 이런 혼돈스러움도 어지러움도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 고마울 때가 있다, 정말 가끔씩은 말이다.

해가 구름에 잠시 가려지네.

그래 정말 지쳤나 보다.
오지도 않고 본 적도 없는 그런 내일이 왜 두려운지 아직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내일과 직접 마주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본 적이 없어 무서울 수도 있겠다만...

예기불안이니 뭐니 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단어에 더욱더 짓눌리니 이 말은 떠올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지치는가 보다.

늘 용기 없음을 감추려고 웃을 수밖에 없는 내 영혼이 가여워, 한참을 대웅전에 앉아 원망하듯 쳐다본 여래께서는 쉽사리 답을 주진 않고, 그냥 잠시나마 쳐다봐주신다.


그래도 그게 어디겠는가. 봐주신다는 게, 찰나 속에서도 마주한 눈빛의 나눔이 있었다는 게, 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게.

설렐 순 없었지만 버틸 수 있으니 오늘도 이만하면 됐다.

단순한 절집 맞배지붕 끝 풍경소리는 아직도 그대로 건 만, 처마 밑 단청은 바래져있다.

난 이제 괜찮다. 아니 괜찮아진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이면 그만큼 또 멀어져 버릴 내일, 늘 한 번도 보지 못한 내일도 조금은 덜 두려워진 것도 같다.

그럼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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