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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03. 2023

포항 오어사에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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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이들과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으면 설다.


그 사람들이 그립거나 보고 싶을 때 그럴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어떤 경우는 익숙한 장소지만, 문득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장소도 있는 것 같다.

문득 떠 오른 장소를 가고 싶어지면, 가벼운 가방하나에 작은 물병 하나 챙겨 그곳으로 가본다.


 행복한 순간이다.

그 행복한 느낌도 좋은 이들과의 만남을 위한 약속처럼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물병 하나 들어 있는 가벼운 가방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여기 절 집으로 오고 말았다.    


큰 호수를 절 옆에 두고도 주눅 들지 고 더 큰 뜻을 펼칠 듯 잔잔한 웃음의 여래께서 앉아 계신 여기는 포항에 있는 운제산 오어사(雲梯山 吾魚寺)다.

포항 운제산 오어사(浦項 雲梯山 吾魚寺)

오어사, 나 오(吾), 물고기 어(魚),

절 이름이 웃기다.

내 물고 절[吾魚寺]이라니.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은 후 변을 보고 나니 물고기 두 마리가 나왔고 한 마리는 강 아래로 내려가고, 다른 한 마리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오어지(吾魚池)

고승들은 그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자기 물고기라고 하면서 서로의 공력(工力)을 뽐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내 물고기라는 뜻의 오어사가 되었다고 한다.


자칫, 무거울 뻔했던 절집과 무서울 것 같은 고승들의 위엄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니 여기 오어사가 한결 더 가깝고 또 가볍게 느껴지니 좋다.


그런데 그 물고기는 정말 누구의 물고기였을까?

그리고, 그것이 그 고승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을까!     


아무렴 어떠리!


그저 웃을 수 있게 해 주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 같은 곳이 있으니, 그저 좋기만 하다.


웃음 짓게 하는 대사와 선사 그 여유(餘裕)가 좋다.     

오어사 대웅전 (吾魚寺 大雄殿)

한가위가 지나고 이제 서서히 가을로 접어드는 호숫가 옆 절집에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남은 날들이 더 소중하게 쓰일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많은 이들이 와 있다.

간절히 절하는 나이 든 어느 할머니의 바람은 무엇일까? 여래만이 알고 계시기에 연신 그 미소가 마음 든든하다.

하여 나도 그 든든한 미소에 내 바람도 함께 말없이 들려드리니, 그 미소가 더 켜져 있어 마음이 놓인다.   

조금 오랫동안 대웅전 옆 작은 전각에 앉아 이것저것 생각에 잠겨 절 마당을 보니, 가을꽃이 예쁘게 피어 가을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참 예쁜 계절이 기다려진다.     


꽤 높은 산으로 눈을 돌리니, 산 위에 전각 지붕들이 보여, 또 한참을 올랐다.

자장암(慈藏庵)이라 적혀있다.

자장암(慈藏庵)

가뿐 숨이 안정될 때쯤 전각의 여래보다 기와에 새긴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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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것까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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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그림 따라 웃지 않고는 돌아 설 수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그 그림처럼 웃는 내 얼굴을 상상하니, 더 웃음이 커져 버린다.

그림을 그린 이를 보지 않아도 그 얼굴이 그대로 떠오른다.

저 미소 그대로 일게 틀림이 없다


나는 감사할 일들이 감사받을 일들보다 더 많은 걸 이제 여기서야 깨닫고 나니, 부끄러움 때문에 더 멋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싶어 진다.     


그 옆에 그림에는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

이라고 적혀 있다.

좋은 생각이 필요하다, 좋은 생각대로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으니, 좋은 생각대로 이루어지려면, 좋은 생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단순한 진리가 적혀 있는데, 이제라도 좋은 생각만 해보려고 해야겠다.


힘겹게 올라왔지만 많은 걸 배우고 내려가는 산길은 또 역시 가볍다

비록 초가을 마음 바쁜 모기들에게 넉넉하게 보시(布施)를 했지만 말이다.     


늦여름 색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이른 가을이다.

계절의 변화는 항상 두 가지 마음이 합쳐진다.


아쉬움과 설렘.


우리들 사는 것처럼 계절이 가지는 느낌도 이 두 단어들의 반복인 게 아닐까!     

남은 가을이 지나고, 올 겨울에는 이런 아쉬움과 설렘들이 꼭 좋은 추억으로 남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말이다


한참을 자 이런저런 좋은 생각에 잠기다 절집 문을 나오니,

조금씩, 아주 조금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 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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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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