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윙어스의 공연은 매달, 혹은 격월로 이어졌다. 시간은 늘 빠듯했지만, 선배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좋아 연습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날도 어느 공연 뒤풀이 자리였다.
열심히 연습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나를 아껴주는 선배님들이 고마워 술이 물처럼 넘어갔다. 고깃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2차 호프집, 3차 노래방으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 나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다음 날 아침, 기억은 중간중간 끊어져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제온 선배님이 헤이즐 선배와 함께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셨던 장면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미야, 정신 좀 차려봐. 지금 직진 중인데, 어디로 가야 해?” 나는 게슴츠레 눈을 뜬 채, 혀가 꼬여 말했다. “네에… 저 앞에서 좌회전하시면 돼요…”
그로부터 2주 후, 다음 공연을 위해 다시 연습실에 모였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나미 왔구나.”
그런데 헤이즐 선배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다른 후배가 들어왔다.
“어, 애리얼 왔구나!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밥은 먹었니?”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반겨주는 그 모습이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헤이즐 선배님,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선배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다른 후배에게 말했다.
“주미아, 우리 블랙커피 내려 마실까?”
“선배님, 그날 제가 너무 취해서… 많이 힘드셨죠? 죄송해요.” 선배님은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말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날 내가 많이 취해서 화나신 건가? 혹시 내가 기억 못 하는 무슨 추태라도 있었던 걸까?’
그날 이후로 헤이즐 선배는 한 달 내내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아, 더 이상 윙어스에서 버티는 게 힘들다. 쉬는 날, 음악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서 연습실에 나오는 건데…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이 기분으로는 음악을 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내가 윙어스를 탈퇴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데, 정말 괜찮을까?’ 심각하게 탈퇴를 고민하던 즈음, 헤이즐 선배가 내게 다가왔다.
“나미야, 밖으로 나와봐.” “너, 그날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나?”
“제가 너무 취해서… 중간중간 기억이 안 나요. 나중엔 그냥 엎드려서 잤던 것 같아요.”
“너, 그날 공연 보러 왔던 Y 선배님이랑 딱 붙어 앉아서 다정하게 얘기 많이 하더라. 노래방에서 네가 의자에 누워 잠들었을 땐 신발도 가지런히 정리해주더라. 그 선배님 유부남인 거 알지? 사귀는 거야?”
“아니에요 선배님. 저 그 매니저님이 막내 때 제가 서툴게 일할 때 잘해주셨던 게 기억나서 감사 인사 드렸던 것 뿐이에요.” “그 사람, 널 바라보는 눈빛이 끈적했어.”
“절대 아니에요 선배님. 그런 사이 아니에요.” “내가 너 그 사람한테서 떼어놓느라 얼마나 혼났는지 아니?" “저는 그 매니저님이 왜 제 신발을 정리했는지는 몰라요. 정말 아니에요, 선배님. 흑… 흑…”
충격이었다. 그날,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아무리 편한 윙어스라도… 회사는 회사구나. 여긴 대학 동아리가 아닌 거야. 회사 사람들과 술 마실 땐… 마지막 정신만큼은 꼭 붙잡고 있어야 했던 거야.’
그 일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이후로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내가 선배가 되어도 마지막 한 잔은 늘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