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 좋은데, 음악은 오염되었다

by 하이라이트릴

영한 선생님이 떠나신 뒤로 한동안 기타 레슨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온 선배님이 말했다.

“여성 밴드로 무대 한 번 나가보자.” 그러면서 곡 하나를 건네주셨다.


연습 날이 되어 기타를 잡자마자 선배님의 말이 쏟아졌다.

“나미야, 너 기타 실력이 아직도 이 모양이냐? 이게 무슨 기타 사운드야?”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되겠다. 다시 선생님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일렉기타 동호회 게시판을 뒤졌다. 우리 집에서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들로 추려서, 눈에 띄는 몇몇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가장 먼저 Y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일단 한 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속한 날, ‘Y합주실’이라는 간판 아래 지하로 내려갔다. 하얀 벽 아래엔 알록달록한 기타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아, 예,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가 묻는다. “기타 쳐보신 적 있으세요?” “네, 1년 반 정도 배웠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레슨생을 면접 보고 뽑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야 레슨이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와보시라고 한 거예요. 마음에 드네요. 그럼 레슨비는 얼마로 하실래요?” ‘뭐지? 레슨생을 취향 따라 뽑겠다는 건가? 그런데 레슨비도 미정이야?’ “그럼 전에 배우던 선생님과 같은 조건으로 할게요. 한 달 네 번에 10만 원이요.”

“좋습니다. 무슨 요일, 몇 시로 할까요?” “저는 승무원이라 스케줄 근무를 해요. 제 스케줄이 정해지면 그때그때 맞춰서 받을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하죠. 지금 바로 시작할까요?”


그는 기타를 가리켰다.

“여기 보이는 테일러 기타, 500만 원짜리입니다. 밑에 꾹꾹이 이펙터들도 다 합치면 200만 원 넘게 들었어요. 제 여자친구라면 이런 거 얼마든지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뭐야, 갑자기 왜 여친 타령이야?’ 일단 첫 레슨을 마치고, 10만 원을 지불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 12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나미 씨, 지금 뭐하세요? 레슨 받으러 오실래요? 제 여친 되시면 테일러 기타 얼마든지 빌려드릴 수 있어요.” ‘이게 뭐야. 완전 저질이잖아.’ “선생님, 밤이 늦어서 외출할 수 없습니다. 다음 레슨 때 뵐게요.” 나는 정중히 선을 그었다.


다음 주, 다시 연습실을 찾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미 씨 오셨어요?” 그는 느닷없이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더니 말했다. “테일러 기타 한 번 쳐볼래요?” 그러면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선생님, 뭐하세요? 저, 레슨 안 받을게요.” 나는 그대로 뛰쳐나왔다. 레슨은 고작 한 번뿐이었지만, 저런 저질스러운 사람을 스승이라 부르며 매주 마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10만 원을 버리는 게 나았다.


아무리 기타를 잘 치고 값비싼 장비를 갖췄다 한들,

그의 음악은 이미 오염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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