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를 죽였다

이 여자의 생존법 - 연수

by Lali Whale

망고를 죽였다.


연수는 부엌 개수대에 망고를 넣어 두고 여러 개의 젓가락을 힘껏 망고의 목에 쑤셔 넣었다. 망고는 선한 눈망울로 조금의 원망 없이 연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젓가락이 꽂힌 망고의 목에서 피가 흘렀다. 연수는 왜 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망고를 자신이 가장 애정하는 부엌에서 죽였다. 죽은 망고를 보며 그녀는 스스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혼란스럽고 슬펐다.


연수는 섬뜩함에 눌려 꿈에서 깼다.


'내가 왜 망고를 죽였지?'


일어나자마자 침대 옆 캔넬 속의 망고를 확인했다. 눈이 크고 주둥이가 납죽한 시츄, 망고는 너무나도 순한 녀석이었다. 이제 7살인 망고는 하루 중 대부분을 켄넬 속에서 잠을 잤다. 긴 허리에 크림색 털이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중간중간 갈색 털이 있는 망고는 간밤에 어떤 의문의 일들이 있었는지 모르고 나를 보자 게으르게 꼬리를 흔들었다.


- 망고 밥 먹자.


연수는 아침을 먹기 전에 망고의 밥을 먼저 챙겨주고 찬장에서 후레이크와 견과류 통을 꺼내 식탁 위에 두었다. 어제 먹은 빈컵들이 개수대에 몇 개 담겨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는 아침은 무엇을 먹어도 퍽퍽하게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연수는 우걱우걱 마른 사료 같은 후레이크와 아몬드를 씹어 먹었다. 입안에 가득 음식물을 담고 밥을 먹는 망고에게 다가가 털로 덮여 있는 목을 다시 살펴보았다. 밥 먹고 있는 녀석을 건드리는데도 망고는 연수에게 싫은 기색도 하지 않았지만, 입에서는 침이 뚝하고 떨어졌다. 털을 비집으면 보이는 망고의 하얀 속살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연수는 납작한 망고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연수가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는 1년이 넘었다. 언제까지 약을 계속 먹어야 할지 정말 괜찮아지기는 하는 건지 막막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래도 지금은 불안약을 먹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매월 한 번씩 병원에 갔고 매주 한 번씩 상담을 받았다. 약도 빠지지 않고 먹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이유 모를 우울감이 쑥 하고 밀려오는 때가 있었다. 한번 밀려온 시꺼먼 감정은 삽시간에 연수를 잡아먹는 것 같았다. 그런 때면 자신이 까만 잉크가 담긴 비커에 퐁당 빠져 버린 동전같이 느껴졌다. 발버둥 칠 수도 없이 왈칵 삼켜져 버리는 것 같았다.


자기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망고를 보면서도 자신의 개수대에서 죽어가는 망고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 앞에 젓가락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 모습이 상상이 되자, 연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둥거렸다. 도망가라는 북소리처럼 쿵쿵 쿵쿵 연수를 재촉했다. 연수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신발장의 운동화를 대충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갔다. 검은 그림자에 완전히 먹히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도망가야 한다. 연수는 고층에 멈춰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늦은 아침의 아파트 주변은 햇빛이 밝았다. 경비원아저씨가 큰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며 연수에게 아는 체를 하였다. 연수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 아파트 단지에서 외부의 개천으로 연결되는 뒷문을 통해 나왔다. 간밤에 한차례 비가 왔는지 보도블록이 젖어있었다. 양말을 신지 않아서 운동화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가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태양아래 있으면 아무리 대단한 우울감도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빠른 속도로 개천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산책할 때 쓰는 모자를 가져오지 않아 눈이 부셨지만 오히려 좋았다. 연수의 옆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여럿이 쌩쌩 지나갔다. 연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휘청였지만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았다.


지난 상담에서 상담사가 연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보는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이에요."


꿈을 보는 여러 가지 시각 중 하나라고 했다. 그렇다면 젓가락을 들고 있는 것도 개수대에서 미동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것도 결국은 자신인가 하는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겨우 한 발짝 뒤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시작인 건가 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고개가 힘없이 툭 떨구어졌다. 연수의 머리 위로만 먹구름이 잔뜩 껴있는 것 같았다.


연수의 시선이 머무는 시멘트 길 위로 지렁이 한 마리가 햇빛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렁이는 살려고 애썼지만 머리 쪽이 점점 더 길의 중앙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몇 년을 산 것인지 길고 통통한 진분홍색 몸통은 아직 수분이 남아 매끄러웠다. 이대로라면 시멘트 길바닥 위에서 말라죽거나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전거에 깔려 책받침처럼 납죽해지고 말 것이었다. 연수는 주변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찾았다. 막상 찾으려니 적당한 나뭇가지가 없었다. 비가 오고 난 후라 빳빳했을 풀잎 대도 흐느적거려 쓸만하지 않았다. 연수는 어쩔 수 없이 긴 잡초 잎을 떼어 지렁이 쪽으로 갔다. 풀잎을 지렁이 밑으로 넣어 들 것처럼 만들 계획이었다. 지렁이는 자신을 살려주려는 지도 모르고 안간힘을 쓰며 이파리 위로 올라가지 않으려 했지만 눈이 없는 녀석은 피한다고 피해도 결국 연수의 손아귀에 있었다. 연수는 갖은 인상을 쓰며 가능한 지렁이에 손가락이 닿지 않도록 애쓰며 이파리에 올린 지렁이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그리곤 여전히 꿈틀거리는 녀석을 길 옆의 풀밭에 던져 주었다. 풀잎 위로 떨어진 지렁이는 온몸을 비틀어 바닥으로 내려가더니 이내 흙속으로 쓱하고 사라졌다. 연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뜨거운 시멘트길 위의 지렁이도, 어줍지 않게 지렁이를 살리려는 자신도 결국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한 무리가 지렁이가 꿈틀거리던 자리를 쌩쌩 지나갔다. 길 옆으로 연보랏빛 나팔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연수는 방향을 틀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양말도 신고, 선크림도 꼼꼼히 바르고, 챙이 넓은 산책용 모자도 쓰고 망고를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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