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자의 생존법- 은진
결혼행진곡은 뭔가 너무 흔하다고 생각했다. 졸업식장에서 졸업식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너무나 예상되고 뻔한 스토리 같아 은진은 자신의 결혼식에서 그 음악을 틀고 싶지 않았다. 은진이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친구의 결혼식에 간 적이 있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어 결혼식장 변두리에 쭈뼛쭈뼛 앉아 있었다. 그 때 울린 노래가 over the rainbow였다. 어딘가 있는 무지개. 겁많은 사자같은 은진을 안으로 초대하는 것 같은 따뜻한 울림이었다.
'미국애들도 안쓰는 결혼행진곡을 한국인인 내 결혼에?'
그렇게 고른 곡이 파헬벨의 케논이었다. 곡의 역사나 의미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곡이었다. 여러명의 어린 아이들이 조르르 따라 뛰며 행복해 하는 느낌이 버진로드를 걷는 은진과 진호를 축하하고 반겨줄것 같아서였다.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곡이니 진호도 크게 반대할 것 같지 않았다.
- 결혼식 노래는 케논어때?
- 뭐? 카메라?
- 아니 파헬벨의 케논 말이야.
- 어휴. 그게 뭐야. 주례도 하지 말자고해 폐백도 없애자고해 이제는 결혼행진곡도 하지 말자고?
- 그게 뭐가 중요하니. 너도 들어봐. 진짜 좋아.
- 야. 다 네맘대로 할거면서 뭘 물어봐.
더 얘기하면 싸울 것이 뻔해 은진은 핸드폰에서 손을 뗐다. 연애 초기에는 은진이 말이 없으면 집까지 찾아와서 은진의 마음을 풀어주려했던 진호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화해서 '넌 항상 그런식이지. 네 맘대로 하고 안되면 입다물고.' 라는 식으로 말하곤 끊어버린곤 했다. 진호로 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 괜슬히 외로워져서 한동안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식에 대해 은진이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의례 있는 겉치레를 빼고 싶었다. 결혼하는 당사자의 행복과 자신들을 축복해주는 분위기 안에서 소박하게 식을 치르고 싶었다.
어떤 결혼식을 해도 큰 상관없다던 진호와는 식장의 위치를 고를 때 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이 될 분들은 그분들이 사는 지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은진은 우리의 결혼식이니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식장을 잡자고 했다. 하지만 별다른 반대가 없던 진호도 막상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당황했다. 분명히 서로 합의한 내용이었지만, 진호의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다시 논의하고 싸우고 어쩔수 없이 결정되는 일들이 생겼다. 주례 선생님으로 마땅히 부탁할 분이 없었고, 결혼식장에서 돈을 내고 주례를 사야하나 고민할 때도 그럴거면 주례없이 결혼식을 치루자고 한 은진과 주례없이 무슨 결혼식이 냐는 진호 부모님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은진은 주례를 돈을 주고 모셔오는 것도, 일면식도 없는데 시부모님 될 분들이 아는 건너건너 성공한 사람의 영혼없는 얘기를 자신의 결혼식에서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 부터는 진호가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것에 은진은 서운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다 그런거라고 이미 결혼한 친구들과 선배들이 한결같이 얘기했다. 은진 자신에게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런 문제에 봉착할 때 마다 은진은 당혹스러웠다. 케논이 뭐라고.
- 그래. 그럼 너 원하는 걸로 해. 결혼행진곡 틀면 되는거야?
- 갑자기 왜이래?
- 아니. 너가 다 내 맘대로 한다고 하니까.... ㅠㅠ
- 식장에서 양복 입을 때 양말도 미리 준비해주냐?
- 양말?
- 어. 가져가야 하나해서.
- 양말은 가져가야하지 않을까?
- 그래 이거 사진 봐봐. 이 양말어떤가?
진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에니메이션 캐릭터가 복숭아 뼈 근처에 선명하게 그려진 양말사진을 은진에게 보냈다.
- 아주 신박하고 좋네.
- 그지? 네것도 하나 샀어.
- 난 스타킹 신을건데.
- 신혼여행가서 신으면되지~
- 아하.
- 케논해. 들어보니까 좋더라. 에반게리온 마지막편에 나오는 음악이던데. ㅎㅎㅎ
- 그 말들으니까 그 노래 해야할까 싶다. 다 망하는 내용 아니었냐?
- 망하고 또 새로 시작하는거지 뭐.
파핼벨의 케논에서 은진은 입장을 하고 결혼식 앞 포토테이블에는 진호가 좋아하는 에반게리언의 피규어를 두기로 그들은 잠정 합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