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의 내가 욕망한 그의 입술

by Lali Whale

연대에 다니는 잘생긴 남자 교생 선생님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은 술렁였다.


키도 크고 교회 오빠 스타일의 반듯한 외모에 심지어 연세대를 다닌다니 마치 연예인이 온 것처럼 분위기는 화끈했다. 교무실에 다닥다닥 붙어서 교생 선생님의 얼굴을 보려 하거나 매점에서 산 음료수를 건네고는 까르르 웃는 내 옆의 친구들을 보며 나는 비웃었다.


'칫. 공부나 할 것이지.'


나는 동요하지 않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록음악을 들으며 열공모드를 유지했다. 교생선생님이 오면 학습분위기가 산만해지고 아이들이 들떠서 수업이 잘 되지 않았기에 짜증이 났다. 얼마 수업도 안 하고 실습이 끝나면 떠나는데, 그걸 또 환송회를 한다는 둥 돈을 모아 선물을 마련한다는 둥 그런 소모적인 행위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90년 대 중반 서울의 8 학군이라 불리는 곳의 여고를 다니던 나는 그래도 수능세대였다. 내신은 내신대로 수능은 수능대로 공부해야 했고 지금처럼 선택과목도 없어 모든 과목을 다 공부해야 했다. 무엇이 더 힘든 시기인지 묻는 다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철저히 문과생이었던 나에게는 지금이라면 적어도 그때보다는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왜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절실함은 이유가 없었다. '이 대학 못 가면 이생망'은 사실 그때의 내가 믿던 진리였다. 그런 나에게 교생선생님에게 설레고 공부를 놓친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찐 맛없는 아이였는데, 다행히 친구들은 그런 나를 대놓고 미워하지 않았다.


국어 교생선생님이었던 그의 수업에서 아이들은 여지없이 '첫사랑'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속으로 '또 구나' 하며 언어영역 문제집을 꺼내놓았다. 보통은 애써 미루고 달래 가며 가능한 첫사랑 얘기를 피하려 하는데 선생님은 술술 자기 얘기를 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였다. 흔하디 흔한 얘기려니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19금이 되었다. 선생님의 입에서 여자친구와 등산을 하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성관계를 한 얘기가 나왔을 때, 로맨틱한 사랑얘기를 기대했던 아이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언어영역문제집을 펴놓고 있다 나 역시 순간 뜨악했을 정도니 나의 다른 소녀 친구들은 더 놀랐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성희롱이 될 여지가 있는 예민한 이슈인데 그 당시에는 그런 규제는 없었다.


교생 선생님의 산속 정사 얘기는 삽시간에 학교에 퍼졌다. 교무실로 선생님을 보러 가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어졌고, 수업 중에도 아이들의 싸늘한 반응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게 그럴 정도의 일인가 의아했지만 나 역시 교회 오빠 같았던 교생선생님의 정사 스토리는 배반감과 알 수 없는 불쾌함을 주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나는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왜 저렇게까지 싫어하는가? 그때 아이들이 하는 얘기는 "더럽다"였다. "선생님이 더럽다."


'더러운가?'

'뽀뽀는 깨끗하고 섹스는 더러운가?'


공부 밖에 몰랐던 바보였던 나도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놀았는데 한 번은 부모님이 안 계신 친구집에 모여 야한 비디오를 빌려봤다. 정확히 빌려 보려 했다가 실패했다. 그때 빌린 영화가 맥라이언과 앤디가르시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였다. 터무니없이 순진한 우리들은 남자가 여자를 몸으로 사랑해 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가 알코올중독인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얘기였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우리가 숨죽여 기대했던 야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교생선생님의 기대하지 않은 섹스얘기에 기겁했던 우리는 기대했던 섹스가 없는 멜로영화에 크게 실망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 남자친구는 생각도 못했는데 시험이 끝나는 하루의 자유 동안은 성에 대한 욕망과 호기심이 반짝 눈을 떴다. 영화로는 되고 실제에서는 안 되는 성에 대한 욕망은 벽장 속 괴물처럼 갇혀있지만 꿈틀거렸다.


차마 입밖에도 꺼낼 수없었던 17세 여고생의 성욕.

섹스는 금기이고 키스는 로망이고 연애는 사치였던 나의 17세.


나는 꿈속에서 조차 섹스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어서 좋아하는 락커의 입술만을 탐했던 볼 빨간 여고생이었다. 키스도 아닌 뽀뽀! 그나마 공부해야 하니 연애는 못하고 내 시간을 뺏지 않을 자유로운 영혼의 고막 남친들에게 마음 만 허락했다.


고딩엄빠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꼰대가 되어버린 현재까지도 나의 성욕은 벽장 속에 갇혀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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