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트 더 커넥터

이 남자의 생존법 - 경호

by Lali Whale

보급형 커넥터 론칭 기념 특가 할인!


SNS의 스토리를 스킵하던 경호의 시선이 핸드폰 상단 광고에 꽂혔다. 볼드된 보급형이라는 글자가 경호의 눈길을 꽉 사로잡았다. 이제까지의 커넥터는 어플도 고가였지만,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커넥터 기기 자체 가격이 매우 비쌌고 모델마다 각각의 기능이 천차만별이여 결국 패키지로 구입하면 경차 한대 값을 맞먹는다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커넥터가 있으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간관계의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소문에 커넥터를 사기 위한 적금이나 할부, 공유하는 모임까지 생겼었다.


흡사 이어폰 같이 생긴 커넥터는 어플을 열고 작동시키면 함께 기기를 연결한 사람끼리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번역해 주었다. 서로 연동된 가입자의 인지 분석, 생체정보 및 개인의 가족사와 성장과정에 관련된 모든 정보와 과거 트라우마는 물론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의 기대까지 분석하여 상대 가입자와의 관계에서 각 가입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낸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처음 커넥터가 출시되었을 때,


"연인 사이의 문제, 이제 커넥터 하세요! 내 손 안의 커플 테라피."


라는 문구로 소통에 문제가 있던 연인이나 부부, 자녀와의 대화에서 핫아이템으로 대두되었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광고가 눈길을 끈 것은, 같은 사무실의 리사 때문이었다. 지난달에 전체 회식에서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어쩌다 같이 잠자리를 가진 후 일을 할 때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리사는 그 뒤로도 별 반응이 없었고, 먼저 밥이라도 먹자고 하고 싶은데 술 마시고 한 번 잔 것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것 같아 경호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 커넥터를 산다고 리사의 귀에 억지로 커넥터를 꽂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도통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고민이 결론을 맺을 틈도 없이 경호는 보급형 커넥터의 구입 버튼을 이미 눌렀고 12개월 할부로 결제까지 해버렸다. 아직 보급형의 성능이 인터넷에 자세히 리뷰되지도 않았지만 이제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면 나쁘지는 않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커넥터는 다음날 아침 7시에 이미 경호의 집 앞에 고스란히 배달되어 있었다. 경호는 출근 전에 커넥터의 어플을 깔고 기기 안에 동본 된 어플에 무료 1달 사용권 쿠폰을 입력했다. 기계만 있다고 계속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 잠깐 분노했지만, 리사와 잘 되기만 한다면 투자하지 못할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넥터가 있는 사람들끼리는 연애에서 싸우는 일이나 이혼하는 경우가 매우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고가의 상담소들이 문을 닫는 일이 즐비하다고 하였다. 남자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려운 여자어를 해석하는데도 그 어떤 방법보다 효과적이라고 서로 돌려가면 써보기도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커넥터를 리사에게 사용하게 할지가 관건이었다. 리사가 이미 가입자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리사에 대해 다 알지 못하기에 그 정보를 기입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경호가 궁금한 것은 현재 리사가 경호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의 간단한 정보였기 때문에 복잡한 트라우마나 가족관계까지 작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경호는 우선 자신의 정보를 기억나는 대로 입력했다. 질문이 너무 많아 모두를 채우기는 역부족이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그런 후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리사의 나이와 사는 지역, 대학이나 회사에서 보인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비가입자 모드로 입력했다.


리사가 언제 출근할지 몰라 경호는 가능한 일찍 커넥터를 챙겨 출근했다. 회사 1층 카페에서 리사가 잘 마시는 아아를 사서 시범 사용을 부탁해 볼 참이었다. 하지만 리사의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고 경호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오전일과가 어떻게 끝나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리사는 계속 자리를 비웠고, 오늘은 이대로 허사인가 허탈한 마음이 들었지만, 경호도 오후에는 일이 바빠 리사를 챙겨 볼 틈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남았지만 오늘 컨디션이라면 아무 일도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칼퇴를 하려던 때, 리사가 사무실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리사를 주려고 샀던 아아는 이제 얼음이 녹아 맹물 같아져 있었다. 자율근무제에 업무에 따라 재택근무도 유동적인 탓에 다들 정시출근에 퇴근을 하지 않는 터라 이제 출근을 하러 오는 건지 그냥 온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녀의 모습만 보고도 지금은 왠지 심장이 두근두근 하였다.


- 리사 님, 이 시간에 일하러 온 거예요?

- 네. 재택 하다가 미팅이 급하게 하나 대면으로 잡혀서 끌려 나왔어요.

- 아하.

- 경호님은 퇴근하시려나 봐요?

- 아니. 저녁 먹으러 갔다 다시 오려고요.

- 네.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 리사 님 혹시 미팅 끝나고 뭐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어떤?

- 아. 제가 커넥터 이벤트에 당첨되었는데요 마땅히 써볼 데가 없어서요. 혹시 리사 님이 한 번 같이 써봐 주겠어요?

- 오~ 커넥터요? 저도 아직 안 써봤는데 그럼 미팅 끝나고 잠깐 시간 내 볼게요.


경호는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미리 생각한 것도 아닌데 커넥터 경품 이벤트라는 아이디어도 썩 마음에 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했으니 안 갈 수도 없고 경호는 지하의 직원식당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급하게 올라와 자리를 지켰다. 컴퓨터는 켜 놓았으나 일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1시간 여가 지나서 리사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둘은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 커넥터를 연결했다.


- 자, 이제 시작해 볼게요. 리사 님 정보는 대충 기본적인 것만 비회원으로 제가 넣었어요.

- 재밌겠다! 해보고 괜찮으면 저도 사야겠는데요.


커넥터의 작은 불빛이 깜박깜박하며 블루투스가 연결되고 귀로 '커넥트' '커넥트'라는 알림음이 두 번 울렸다.


- 리사 님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 '리사, 기다렸어요. 나는 당신과 자고 싶어요.'

- 어 이게 왜 이래! 아니에요 리사 님.

- '리사, 나는 변태이지만 변태가 아니에요.'

- 리사! 아니에요. 이거 미쳤나.


리사가 불쾌한 표정으로 경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호는 놀라서 리사의 귀에 있는 커넥터를 뽑았다. 커넥터에 손가락이 닿자 핸드폰 어플에서는 반복해서 '리사, 나는 변태이지만 변태가 아니에요. 리사 나는 당신과 자고 싶어요.'라고 반복해서 소리가 들렸다. 리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회의실에 덩그러니 남은 경호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역시 보급형이라 그런가 반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분기탱천하여 어플을 뒤적이는데 고객의 소리를 여니 어플 하단에 작은 글씨로 경고가 적혀있었다.


경고.

가입자 정보를 모두 채우지 않을 경우 커넥터 분석에 오류 확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커넥터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개인적인 문제에 커넥터 본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커넥터의 분석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은 반품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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