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뜩 눈을 떴을 때 소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채 끄지 못한 전등의 살구색 불빛이 등대처럼 빛나고 있었다. 협탁에는 수면제를 담아 두었던 플라스틱 약통이 투명하게 비어있었다. 소라는 엉엉 엄마 잃은 송아지처럼 목놓아 울었다.
도저히 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까만 밤, 하얀 모래사장은 빠져나갈 수 없는 늪처럼 소라의 발을 붙잡았고 앞으로 가면 갈수록 몸은 점점 더 밑으로 하염없이 끌려 내려갔다.
-철썩. 철썩
파도는 소라를 잡아먹을 듯이 달려왔다. 소라는 꿈쩍하지 못하고 바다의 아가리로 한 순간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렇게나 세게 소라의 발을 잡았던 모래사장이 오히려 그녀를 바다로 던져 넣는 것 같았다. 소라의 머리가 낚시 바늘에 달린 찌처럼 파도 위로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소라의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던 그때, 그녀에게 달려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보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한 마리의 바다 물고기처럼 물살을 헤치고 달려오는 그는 그 단단한 팔로 그녀를 끌어안고 뭍으로 나왔다. 그에게 안겨 나온 모래사장은 더 이상 늪이 아니었다. 희미하게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곧 멀어졌다. 쨍쨍한 백사장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소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도 꿈 밖에서도 그는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면 모든 곳이 잠 길듯이 비가 내렸다. 아파트 주차장이 물에 잠겨 익사사고가 나고 계곡의 물이 한순간에 범람해 사람들이 빠져 죽었다. 비가 오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 소라야 비와. 우산!
그와 소라는 만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 살림을 합쳤다. 부모가 없는 그와 부모를 피해온 소라는 레고의 조각처럼 꽉 끼워졌다. 소방관이라는 그의 직업이 소라에게는 든든하면서 두려웠다. 수영도 못하고 달리기도 잘 못하고 겨우 할딱할딱 숨만 쉬며 지내온 것 같은 소라의 삶에 그는 단단한 동아줄 같았다. 하지만, 뉴스에서 화재 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꼬박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소라는 비가 오면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비는 그를 앗아가지 않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소라가 출근하려고 현관문 앞에 갔을 때, 거기에 그가 새로 사놓은 노란 장화가 놓여있었다. 아이도 아닌데 노란색 장화라니 큭큭 웃음이 났지만 그의 마음이 고마워 톡을 보냈다.
- 내가 애야? 노랑 장화를... 고마워.
- 비올 때는 무조건 눈에 잘 띄어야겠지?
- 자기는 우산 챙겼어?
- 물론. 이제 퇴근하려고.
- 응. 난 출근해. 퇴근하면 같이 아귀찜 먹으러 가자.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소라는 전화기가 방전되었으려니 하고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피곤해 잘 것이라 생각하여 더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라가 퇴근을 해서 집에 왔을 때 그는 없었다. 그다음 날도 그의 전화는 답이 없었다. 뉴스에서는 전국의 수해 상황이 속보로 전해졌다. 태풍에 갑작스럽게 터널로 물이 차오르면서 10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고 했다. 소라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서였다. 연고가 없는 그의 장례를 소방서 식구들이 치러주며 그녀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퇴근하던 버스 안에서 그날 한 톡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녀는 차마 그의 장례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소라는 회사를 휴직하고 한동안 그와 살던 집에서 한 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집을 나오기 시작한 순간 매주 병원을 갔다. 그렇게 몇 달간 한 알 한 알 수면제를 모았다.
소라는 화장실로 달려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다. 목에서 신물이 넘어올 때까지 뱉고 또 뱉었다.
낮은 신발장 위에는 그가 사준 노란 장화가 놓여있었다. 그가 좋아하던 운동화가 현관 앞에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었고 등산할 때 신으려고 비싸게 산 등산화가 아직 개시도 못하고 박스에 담겨 신발장 안에 있었다. 현관문에 자석으로 붙여놓은 그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애틋하게 웃고 있었다.
"살아. 소라야, 살아."
꿈속을 헤집어 놓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