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20230823

by Lali Whale

- 그놈의 고양이 새끼 쥐약을 놔서 다 죽여버릴 거야.


미진은 윗집 여자의 서슬 퍼런 저주에 간담이 서늘했다. 아무리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라고 하지만,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 집 저 집 시끄럽게 앙앙 거리는 목소리로 먹을 것 한두 가지를 손에 들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꼭 고양이를 죽이겠다고만 해서가 아니었다. 그 고양이 가족을 동산할배가 얼마나 애지중지 돌보는지를 뻔히 알면서 앞에서는 간드러진 웃음을 보이고 뒤에서는 칼을 가는 모습에 없던 정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윗집 여자가 가져온 옥수수에서 고소하고 단내가 솔솔 올라왔지만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옥수수를 우걱우걱 베어 먹는 여자의 이 사이로 옥수수 찌꺼기가 여기저기 끼어 있었다. 미진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 그 고양이 새끼들이 꼭 우리 집 텃밭에 똥을 싸 논다니까.

- 아직 젖도 안 뗀 애들이라 천지분간 못해서 그렇지. 시간 지나면 다 어미 곁을 떠난다는데...

- 여기 와서 똥 안 싸니까 모르는 거라고. 조금 더 크면 발정 나서 울어댈 건데 그건 또 어쩌라고.

- 그래도 동산할배가 밥 주는 애들인데 그러면 쓰나.

- 밥 주면 똥도 치우라지 노망 난 노친네.


윗집 여자는 미진의 얘기 따윈 관심도 갖지 않았다. 이 동네 터줏대감인 동산할배가 주변 동물들을 돌본다는 건 아랫동네 집 나간 아들도 알 정도였다. 남들은 울타리를 치고, 그물을 설치하고 동물들에게서 애써 가꾼 작물들을 지키려 아등바등하였지만 동산할배는 달랐다. 구부정한 허리로 반듯이 키운 옥수수를 고라니와 멧돼지가 쑥대밭을 만들었을 때도, 감자와 고구마를 두더지들이 죄다 갉아 놓았을 때도, 까만 콩알들을 새들이 와서 다 따먹어 버렸을 때도 무심히 바라만 봤다. 그리곤 얼마 먹지도 못할 농작물을 매년 또 심었다. 그런 동산할배를 사람들은 별나다고 했고 노망 났다고 했다.


하지만 옆집에 사는 미진은 안다. 할배의 색시가 할배에게 그렇게 구박을 들으면서도 동물들을 제 자식처럼 예뻐했었다. 할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고양이들의 밥이며 동네 주인 없는 개들의 밥과 물을 챙겼다. 몇 해 전 미진은 암에 걸려 좀처럼 나오지 않던 할매를 길가에서 보았다. 거죽만 남아 앙상한 몸을 물음표처럼 굽히고 길가에 쪼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이가 곁에 가서 앉아 보니, 할매는 뙤약볕 아래 온몸을 꿈틀거리며 죽어가는 지렁이를 나뭇가지같이 바짝 마른 손가락으로 살살 밀어 흙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주름이 자글한 이마로 땀구슬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데 눈빛은 이슬처럼 맑았다. 할매의 장례식에서도 할배는 그 무심한 얼굴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동산할배를 욕하는 이는 없었다. 3년이 넘는 지독한 투병생활 동안 동산할배는 할매의 병시중을 오롯이 해내었다. 죽기 서너 달 동안은 할매의 똥오줌까지 할배가 받아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할배는 색시가 죽고 수년간 그녀가 돌보던 녀석들의 새끼에 새끼까지 집에 오는 생명은 마다하지 않고 보살폈다.


미진 역시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할배의 밭을 넘보던 산짐승이 미진의 밭으로 넘어오기가 일쑤였고, 숲길로 새 나오는 뱀을 작대기로 눌러 죽여야 하는 순간에도 은근히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늙은 나이지만 농사일에 인이 박힌 할배는 손 가는 일이 한두 군데가 아닌 시골생활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미진의 형편을 조용히 도와주었다. 할배 앞으로 나온 농협의 퇴비를 나눠주기도 하였고 내 땅 니 땅 구분 없이 미진의 밭과 길의 잡초도 베어주고 미진이 집을 비울 때는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미진의 농작물을 돌봐주었다. 이 마을에서 동산할배와 돌아가신 할매에게 도움받지 않은 집은 거의 없었다.


시끄럽던 윗집여자가 돌아가고 미진은 마음이 무거웠다. 저 야멸찬 여자가 기어이 새끼 고양이들이 잘 가는 길목에 독이든 먹이를 놓을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았다. 미진은 집안의 불을 모두 끈 채로 부엌 뒤로 난 베란다에서 윗집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 빼고 주변은 캄캄했다. 오늘이 그날은 아닌가 보다 싶어 미진은 다시 잠자리로 더듬더듬 걸어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미진은 윗집 눈치만 살폈다. 동산할배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할지 아니면 윗집여자를 구슬려 말려야 할지 미진은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미진이 할배에게 얘기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시끄러운 여자가 그녀에게 와 악다구니를 쓸 것이 무서웠고 그렇다고 안과 속이 다른 윗집여자를 진심으로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눈치만 보고 있자니 아직 어린 아기고양이들이 거품을 물고 죽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미진은 잠도 안 오고 밥맛도 떨어졌다. 데크로 연결된 마루의 큰 창 밖으로 삼색이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혼자만 밥을 못 얻어먹었는지 똘똘한 눈으로 하염없이 미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도 모르고 저렇게 천진하게 사람 앞에 본심을 들어내고 있는 모습이 측은했다. 미진은 아침에 먹다 남은 고등어구이를 냉장고에서 꺼내 가시를 발라 내주었다. 삼색이는 도망도 가지 않은고 그 자리에 앉아 미진이 준 고등어살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미진은 이가 나간 국사발에 물을 담아 문밖에 내주었다. 선분홍색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물을 마시더니 작은 발로 얼굴을 다듬었다.


삼색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진의 창밖으로 찾아들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몸을 길게 뻗어 뒹굴거리기도 하고, 미진이 데크로 나가면 미진의 다리에 몸을 쓸고 지나가며 재롱을 부렸다. 미진은 마트에 가서 고양이 사료를 사들고 와 그날그날 먹다 남은 음식에 섞어 주었다. 삼색이는 언제부터인가 더는 동산할배 집으로 가지 않았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미진은 삽을 들고 윗집여자의 집으로 갔다. 마침 윗집 여자가 마당의 야외용 식탁에 앉아 동네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 다들 있었네.

- 남의 집에 삽은 들고 웬일이래?

- 응. 동산할배네 삼색이 이제 내가 키우려고.

- 뭐?

- 응. 애기 고양이 있잖아. 젤 이쁜 애.

- 어휴. 그걸 어디다 쓴다고 키운데.

- 쓰긴 그 작은 걸 어디 써. 그래서 이제 삼색이 똥은 내가 치울 테니 걱정 말라고 왔지.

- 뭐? 무슨 똥?

- 삼색이가 여기 마당에 똥 싼다고 쥐약 먹여 죽인다 했잖아. 그래서 이제 똥은 내가 치운다고.


동네 여자들이 먹던 술잔을 내려놓고 윗집여자를 노려 봤다.


- 동산할배네 고양이들한테 쥐약을 먹인다고?

- 아휴. 미쳤나 봐. 내가 언제? 뭔 얘기를 잘못 듣고 와서 이런데!


윗집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둘러댔다.


- 아니라고?

- 아니지. 누가 그래!

- 아니라는 거지. 그래도 똥은 내가 치울게. 이제 우리 고양이니까.


동네 여자들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말없이 윗집여자를 흘겨보았다. 미진은 삽을 가지고 마당 여기 저를 둘러보았다. 흙인지 똥인지 솔방울인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 뭐 하나도 없네. 혹 싸놨으면 얘기하라고. 내 와서 치울 테니까. 알았지?


미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밑으로 내려왔다. 삽을 든 손이 미세하게 달달 떨렸다. 사람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윗집여자를 골탕 먹인 꼴이 너무 자신 같지 않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제 혹시라도 고양이가 죽는다면 온 동네 사람들이 윗집여자를 욕할 것이었다. 그녀는 불쌍한 동산할배의 고양이에게 쥐약을 먹인 악독한 년이라는 꼬리표를 이곳에 사는 내내 달고 살만큼 배짱 있고 안하무인인 이는 아니었다. 이제 미진의 집으로 한동안은 안 오겠지만 오히려 좋았다. 오늘 저녁은 지난주에 사서 먹지 못했던 은색 비늘이 싱싱한 갈치를 구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입맛이 돋았다.


집에 돌아오니 집 앞 데크 위에 삼색이가 자신을 기다리며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밥때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다가가니 물고 있던 작은 쥐 한 마리를 내려놓고 가버렸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작은 고양이가 용케 쥐를 잡아 미진에게 가져간 것이다. 저 쥐를 어떻게 치우나 어익후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기세가 등등하여 데크를 빠져나가는 삼색이의 신난 꼬리를 보니 미진의 마음이 훈훈하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애틋한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