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드윅? 조승우 뮤지컬? 알지 알아.
- 헤더윅! 토마스 헤더윅이라고.
- 다른 헤드윅도 있냐? 거기도 조승우 나오냐?
- 멍청이. 난 오늘 토마스 헤드윅 전시회 보러 서울역 간다. 안 갈래?
- 어디? 안 들려~
기훈은 게임을 하며 헤드폰을 반만 귀에 걸쳐 놓은 도철의 헤드폰을 손으로 딱 쳐서 밀어냈다. 기훈은 미술이나 클래식 음악, 오페라 등을 좋아했고 도철은 오로지 락과 게임이었다.
이런 도철과 친구인지 연인인지 모를 관계로 하우스메이트로 지낸 지는 이제 반년이 지났다. 처음 얘기했던 1년을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 기훈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이미 몇 차례 집을 나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그놈의 돈이 기훈의 덜미를 잡았다. 작년에 무리해서 들어간 주식이 기훈의 기대대로 오르기만 했어도 기훈은 도철과의 관계를 정리했을 것이다.
처음 기훈에게 손을 내민 것도 도철이었다. 월세나 아끼자며 같이 살자고 했지만, 철저히 개인주의자인 도철이 불편을 불구하고 기훈을 받아들인 것은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았다. 바닥도 모르고 떨어지니 지금은 던질 때가 아니라 주울 때라고 기훈은 그나마 있는 돈을 다시 투자했다. 하지만 주식이 오르지 않아서 어쩌면 기훈도 살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더 맞추기 위해 노력할 기회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은 너무 달랐다. 음악적인 취향도, 공간에 대한 감각도, 음식에 대한 선호도 달랐다. 다행한 것은 그들은 서로의 삶에 금을 잘 그었다. 각자 듣고 싶은 음악을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으로 들었고, 각자의 방은 설령 시체가 들어있다 하더라도 참견하지 않았고, 배달음식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켜서 따로 또 함께 먹었다. 공용 공간은 넓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가능한 누구의 것도 두지 않았다. 문제는 욕실이었다. 17평짜리 다가구 주택에 화장실이 2개 있을 리 만무했고, 작기도 작은데 서로 쓰는 시간이나 사용 후의 정리, 물건의 위치등으로 인해 몇 번씩 갈등이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도철의 긴 머리가 화장실 바닥과 비누, 세면대에 붙어 있는 것은 참을 만했다. 하지만, 여름에 벽면과 바닥의 물기를 스크래퍼와 마른 수건으로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물 때와 곰팡이의 원흉이 되는데 뒷정리가 말끔하지 않은 도철에게 기훈은 수도 없이 분노했다. 하지만 도철은 기훈의 분노에 언제나 웃으며 장난을 쳤고, 기훈은 더 화를 낼 수도 없었고 별것도 아닌 일에 과하게 화를 냈다는 생각에 어느새 스스로 청소를 하곤 했다.
지난번 도철의 락공연을 보러 갔을 때 기훈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서로에게 전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공연이니 예의로라도 가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지만 폭풍처럼 몰아치는 굉음을 2시간 넘게 듣고 있자니 온몸의 영혼이 탈탈 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엇보다 공연이 끝나고도 사나흘 동안 귀가 윙윙거려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도철 역시 기훈과 함께 피아노 독주를 보러 가서 피아노 보다 더 크게 코를 골며 잔 이 후로는 더는 기훈의 취미생활에 함께 하지 않았다.
기훈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오늘 볼 전시회의 사전정보를 미리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보고 있었다. 집중해서 핸드폰을 본 것이 문제였다. 기훈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서울역을 지나있었다. 시간이 정해진 전시회는 아니었지만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기훈은 후다닥 용산역에서 내렸다. 다시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바꿔 타려고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도철이라면.. 유턴은 없지.
기훈은 돌아가려던 발길을 다시 출구 쪽으로 돌렸다. 너무나 번잡해서 결코 좋아하지 않는 곳이 용산역이었다. 지하철역을 나오니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유턴은 없다. 기훈은 역 앞의 안내도를 살폈다.
국립중앙박물관 2Km
초등학교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던 기억이 났다. 크고 넓고 지겨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핸드폰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검색해 보았다.
“김홍도 특별전”
‘도철이 김홍도라고 하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 보고 집 근처에서 도철을 불러 치맥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걸었는데도 등에 땀이 송송 맺혔지만 왠지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