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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Feb 21.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룰루밀러 (스포있음)

티키타카 독서모임 2024년 2월

★★☆ 혼돈에서 희망을 찾는 여정, 그 지름길은 없다.

'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시작했는데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 책을 이 끌고 간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혼돈을 이길 방법이 없고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모든 희망을 잃고 혼란만이 남는다면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최근 본 어떤 드라마에서 내가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그 고난이 크지 않아서였다고 하는 장면이 기억났다. 내가 잃은 희망이, 완벽한 혼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다음 스토리는 치열한 복수 이거나 바닷속 조개 같은 삶일 거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울한 마음이 들지만, 이 책은 나약한 나와 같지는 않았다. 


저널리스트인 룰루밀러는 스탠퍼드의 유명한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쫓는다. 그는 수년간 고생하여 채집한 물고기들이 자연재해로 모두 바닥으로 쏟아졌을 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물고기의 비늘에 이름표를 꼬메 넣고 말라가는 물고기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집념의 사나이다. 그는 그의 신념을 어떤 순간에도 굽히지 않고 '중단 없는 전진'(박정희)을 한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는 끊임없이 혼란과 희망을 잃은 삶에 내몰렸던 작가 자신을 위한 탐구였다. 그의 삶의 비밀을 아는 것이 자신의 삶의 구원이 될 것이라 믿어 그녀는 강박적으로 그의 삶을 파헤친다. 


하지만 작가는 조던의 "진주알을 만든 최초의 작은 모래알은 거짓말"(p. 270)이라고 말한다. 조던은 히틀러와 같은 우생학자였다. 물고기를 또 인간을 사다리에 놓고 우열을 갈라 위아래로 분류했던 그는 "사다리는 없다"는 자연의 진실을 부인하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옳다고 의심 없이 믿었다. 작가가 실제 발견한 조던은 '자기 손으로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자이며, 자기기만에 빠져 파리 한 마리를 잡는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안타깝게 그녀가 찾은 희망의 목소리는 거짓이었고 "혼돈을 이길 방법도 결국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 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p. 418)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작가는 스스로 그 방법을 찾는다. 그것까지는 스포 하지 않겠다. 


상담자로서 나도 심한 좌절을 겪은 내담자에게 긍정적 착각, 자기기만을 치료방법으로 쓸 때가 있다. 긍정적 생각이라고 하지 않고 합리적 생각이라고 표현하지만, 어쩔 수 없이 긍정적 기대를 가지게 돕는 "리프레이밍"이라는 인지치료기법이다.  


작가는 말한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수반된다. 그리고 그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하며 "낮은 자존감"을 조용히 응원한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좋았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나를 낮추고 겸손해지는 것. 높은 자존감으로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은 그 방향에 따라 미치광이가 되고 희대의 폭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으로 혼동과 자연 앞에 바짝 엎드린 사람은 대체로 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바닥에서 내가 "개미보다 못한 존재"라는 말에 반박할 논리를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굳이 찾을 일이 안 생기길 빈다. (고난이 보석이라면 까르띠에 반지라도 거절! https://brunch.co.kr/@highnoon2022/23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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