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2024. 3.3)
내가 좋아하는 작가 조해진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송중기 주연의 <로기완>을 봤다.
★★★ 사랑이 구원이라는 흔한 진리 어려운 실천.
나는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라는 단편을 2017년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14. 문학동네)에서 처음 봤다. 누군가의 호의가, 타인의 이해가 어두운 순간 '빛의 호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무려 10년 전의 소설이라는 것이 놀랍다. <빛의 호위> 만큼의 임팩트가 없어서였기도 하지만 그 뒤로 몇몇 작품을 더 보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내던 작가 였다. 그럼에도 작가의 세계관이 따뜻하고 인간적 이어 계속 마음에 새겨두고 있어 배우 송중기 때문이 아닌 원작자 조해진 때문에 챙겨보았다. 내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이야기에는 타인의 삶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존중하고 공감하려는 진심의 노력이 있었다.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를 봤기에 오히려 영화로만 볼 수 있었다.
탈북자 로기완이 벨기에로 밀입국하여 난민지위를 얻고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가 한 편에 있고 그럼에도 그를 살게 하는 것이 오직 생존의 욕구가 아닌 사랑과 연민임을 보여주는 사실은 로맨스 영화였다. (그 안에는 안락사로 엄마를 보낸 딸 마리의 상처와 극복의 이야기, 딸의 수술비를 위해 로기완을 배신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조선족 여인의 이야기도 있다.) 나는 사랑이 구원이라는 흔해빠진 진리를 좋아한다. 구태의연하고 새로울 것 없지만 진실이므로.
이야기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시키려 노력한 감독의 의도 대로 열심히 이해해 보려 했다. 결국 빨리 감기 한 부분도 있지만 나는 로기완을 일부 이해했다.
하지만 답답했다.
다른 리뷰에서 보니 고구마지수를 높게 주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구나 하고 공감도 되었다. 왜 짜증이 났을까? '자신의 처지는 생각 못하고 나대네'라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든 답답함이었다. 주인공인 로기완 스스로도 말하지만 탈북자인 자신이 끼지 않아도 될 싸움에 끼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가지 않아도 될 장소에 가서 엄마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고, 난민지위를 받는 것에만 집중할 시기에 사랑을 꿈꾼다. 마리도 그렇다. 병마로 고통받는 엄마의 안락사를 왜 받아들이지 못하나, 그게 스스로를 마약중독자로 만들고 마피아의 도박게임에 몰아넣게 할 정도의 일인가?라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영화의 표현능력이 부족해서 공감이 안되었다기보다, 어른이 된 나는 효율을 중시하고 목표가 있다면 앞만 보고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였기 때문이다. 나의 기준대로 너희는 왜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냐는 비난의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실 그들은 100m 달리기를 한 것도 아니고, 1등을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제가 그토록 바랬던 것은 이 땅에 살 권리가 아니라 이 땅을 떠날 권리였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로기완의 마지막 대사가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아마 그도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이 아니라 차차 알게 되었으리라는 위안도 있다. 나는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쉽고,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집중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해진 작가의 글을 좋아하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읽지 않은 데에는 내가 나의 죄의식을 들추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환경오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의 삶을 외면했다. 나는 어떤 순간 내가 나 자신을, 난민을,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를 사람이 아닌 쓸모로 보려했다는 것을 반성한다. 하지만 난 내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그것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용서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쉬운 방향이 아닌 불편하고 힘들어도 역으로 올라가는 방향도 선택하길 응원한다.
다시 조해진 작가의 책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