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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Feb 29. 2024

우리는 주 4일제 놀새부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는 둘 다 주 4일제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토요일을 끼고 평일에 3일을, 남편은 일요일을 끼고 평일에 3일을 일한다. 내가 집안일과 아이의 양육을 전담하고 있어 파트로 일하고 아이의 귀가 시간을 고려해 주 2~3일 일하다가 아이가 크면서 주 4일로 일을 늘렸던 차였고 남편은 주 5일로 일하다가 올해부터 4일로 줄이게 된 것이다.  


나는 순수하게 돈을 사랑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은 지라 원래도  버는 것을 좋아하고 미래를 위해 도토리 모으기를 멈추지 않는 다람쥐 같은 유형이다. 반면 남편은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유유자적하는 목가적인 삶을 좋아하며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 베짱이 과이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이루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그냥 잠자면서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남편에게 당신에게 성장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멈춤"이란다. 왜냐니까 자신의 성장은 키와 함께 멈췄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랬던 남편이  년간 노래를 부르던  4 근무를 올해 드디어 이뤄냈다. (ㅠㅠ)  편으로는  불황에 우리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  4일만 일을 하겠다니 당혹스러웠다. 설마 가능하랴 싶어서 하라고는 했는데 진짜 그렇게 근무계약서를 작성해  줄은 몰랐다. 남편은  1 7개월 정도 사업자로 동물병원을 하다가 알차게 말아먹은 후로는 줄곧 진료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남편의 수백 개의 별명 중에 하나가 '김선비'인데 융통성이 부족하고 윤리적이며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그렇기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착하고 신뢰로운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성격임은 분명하다.


남편이 소득을 줄인 데는 우리의 소비패턴도 영향이 크다. 남편은 동물병원 원장님이 직원들에게 선물로 사주신 노스페이스 패딩과 유니클로 플리스를 겨우내 유니폼으로 입고 다녔다. 티몬에서 유행이 한참 지난 9900원짜리 파카와 5000원짜리 티셔츠를 사서 몇 년씩 입는다. 나는 결혼할   32인치 텔레비전과 식기세트, 컴퓨터와 가구들을 10 넘게 쓰고 있다. 우리 둘이 사용하는 의류비는 각자  10만 원을 넘지 않는다. 학회에서 공짜로 얻은 에코백을 쓰고 저녁은 도시락을 싸다니고 시계나 명품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쓰는데 돈은 많이 벌어 뭐 하냐는 남편 말에 딱히  말이 없었다.


(남편이 쓸만하다고 말한 앞코와 옆이 해진 운동화)


근무 계약서에는 인상된  5 연봉에 밑줄이 쫙쫙 그어 진후  4일에 맞는 연봉이 적혀있었다. 계산해 보니 작년 월급 보다도  적었다. 신이  남편과 달리 나의 머릿속으로는 있지도 않은 10년의 가계부가 "쇼트!"라고 비명을 지르며 지나갔다. 소비도 적은데 도대체 나가는 돈은 왜이다지도 많은지 놀라울 따름이다. 월급이 줄어든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원래  것을 빼앗긴  같아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달간 어떤 얘기에도, "우리는 이제 돈이 없어서..." 유행어가 되었다. 하지만   동안  없다는 얘기를  쉬듯이 듣던 남편이 분연히 일어나 이럴 거면 그냥 5일제로 다시 일하겠다고 뾰롱퉁해지는 바람에  유행어는  쓰지 않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우리 가정의 4번 타자였던 남편이 주 4일제로 전환하면서 나는 쉬는 날을 조정해서 남편과 주중에 이틀을 함께 놀고 있다. 직업 특성상 둘 다 주말에 하루는 일을 해야 해서 주 5일로 일을 해도 온전히 함께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뿐이었다. 지금도 주말은 돌아가며 애를 보지만, 주중에 이틀을 함께 있으니 '이제 돈은 없지만' 풍요로워진 기분이다. 지금은 초등학생의 길고 긴 방학이라 여유 따윈 없지만, 차가 밀리지 않는 평일에도 여행을 떠날 수 있고 긴 산책이나 아들이 좋아하는 탁구나 배드민턴, 수영을 함께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만족도가 매우 컸다. 고질병이었던 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완화되었고, 몸무게가 늘었다.


오늘 나는 원래 일을 하는 날인데, 상담이 캔슬되어 놀고 있다. 작년 말부터 상담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일거리가  줄었다. 일이 줄어만큼 월급이 줄어드는 자유용역의 설움과 불안! 10년째 상담사의 연봉은 거의 변화가 없고, 프리랜서 시간급도 거의 진짜 거의 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불황이 정신건강 업계에는  타격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 주머니에 돈이 마르면 스트레스는  쌓이지만, 마음에  돈은 자꾸 뒤로 밀린다. 괜스레 구인란을 뒤적이며 다른 도토리는  없나 얼쩡거리다가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 상담 캔슬돼서 노는 중

- 너 놀새~ ㅋㅋㅋ 푹 쉬렴


내가 논다고 구박하지 않고 더 일한다고 계산하지 않는 남편은 일 없으면 푹 쉬라고 부러워한다. 그와 얘기하면 난 언제나 부자 같다. 내일도 내년도 10년 뒤도 우리는 사랑하며 잘 살 것 같고 모두가 걱정하는 은퇴 후의 경제적인 고민도 들지 않는다. 치밀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데 그의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


더 훌륭해지지 않아도 되고, 더 벌지 않아도 되고,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넌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그와 있으면 미칠 노릇인데 편하다.


언제나  통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의 큰 그림에 미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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