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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Mar 07. 2024

왜 짜증 내?

간밤에 시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다 남편이 짜증을 냈다. 그는 안 냈다고 했지만 그의 보통의 말투와 표정을 아는 나는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요는 이렇다. 시어머님은 시골에 사시고 우리는 분당에 사는데 함께 여행을 가려면 동선상 어머님이 분당으로 오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님은 운전을 못하시고 그 시골은 대중교통이 너무나 불편하여 결국 누군가 왕복 라이드를 하거나 장거리를 택시를 이용해서 우리 집까지 오셔야 한다. 나는 우리가 여행을 모시고 가니 한 번은 우리가 모시고 오더라도 한 번은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복잡하게 형제들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신이 갈 때 올 때 다 라이드를 하겠다고 했다. 그럼 휴가를 더 써야 하거나 왕복 운전 후 출근을 해야 하니 피로도가 쌓이니 나는 남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계속했고 결국 남편이 짜증스럽게 내 말을 받아쳤다.


사실 난 그가 왜 짜증을 냈는지 안다.


자기가 괜찮다는데 내가 내 생각을 '계속' 얘기하는 것에 분노가 일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시모와 여행을 같이 가는 것에 대해 내가 '위세'를 떨고 있다고 조금은 생각했을 것 같다. 또 사실 다른 사람이 보면 짜증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정도로 그 강도가 약한데 아내 저 괴물딱지는 또 왜 트집인가 싶을 것이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이 짜증을 내면 난 금방 토라진다.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그 마음은 늙지 않는다. 내가 이 마음에 쑥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내려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빨리 스스로를 건져 올려야 했다. 난 이불속에서 김사월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전보다 관대하지 않아, 덜 참아주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가 나의 말을 들어주는 것, 내가 싫은 것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내가 화가 난 것은 그가 나의 통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고 바라는 것은 그가 내 통제 안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화는 사실 합당하지 않다. 나는 그를 통제할 권리가 없는데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니 나의 전제는 잘못되었다.  물론 이동에 있어 효율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 나의 '위세'의 정당성은 합당한 면이 있다. 내가 그의 편의를 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짜증이 날 수 있고 그 정도 내는 것이면 아주 양반이다.


난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맷집이 있는 나의 남편은 사실 이 정도로는 꿈쩍하지 않는다. 아침에도 노래를 부르며 아들과 아침을 냠냠 먹었다. 내가 어제 1시간 넘게 만든 푹익은 무와 메추리알, 아삭하게 신경 쓴 꽈리고추가 들어간 장조림을 먹으면서 말이다. 나이가 먹어도 토라지는 건 매 한 가지지만 회복력은 매우 빨라졌다.   


우리는 아들이 등교를 하고 9시에 산책을 가고 커피 맛집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공원에 앉아 둘이 나눠 마셨다. 다 알지만, 난 그에게 짜증 낸 것을 사과하라며 윽박지르고 남편은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날 어르고 달래준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도 나도 이 과정이 서로에 대한 성의임을 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기분을 배려하기 위한 성의. 난 전보다는 덜 지랄 맞아서 착하고 남편은 여전히 관대해서 착하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엉엉> 중

"잠시 네가 다른 사람과 얘기한 사이 나는 화가 나서 술집을 나와 밖은 너무 추워 난 엉엉엉 울어"

https://youtu.be/wvTwBaaza7Q?si=rtrJGfKe2dbvlh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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