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과 <Leaving Las Vegas>
★★★ 사랑하는 건 분자를 조금이라도 늘리는 일이란 당연한 사실을 따뜻하게 전함
오래전에 읽은 권여선의 <봄밤>이 담겨있는 소설집을 다시 보았다. 다른 단편들도 함께 있지만 <봄밤> 이 정녕 주정뱅이에 걸맞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봄밤>은 도저히 술을 끊을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와 신용불량자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시한부로 살아가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의 사랑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낙오자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서로를 앉은뱅이와 장님처럼 끌어안고 느리고 위태롭지만 서로가 있어 사람답게 살아간다. 매 순간이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 모습은 봄날처럼 따뜻하다.
소설에서 결국 알코올중독자인 영경과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인 수환은 둘 다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함께 지방 요양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수환은 의사들의 만류에도 영경의 보호자로 그녀가 술을 마시러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그것이 진짜 그녀를 사랑해서 할 수 있는, 책에 서 말하듯 자신의 분자를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수환은 믿기 때문이다. 상대를 잃을 수 있음에도 상대가 원하는 일을 지지해 주는 것. 나는 그런 사랑을 동경했지만 하지 못했다. 너무 무서우니까. 둘 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면서도 더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려고 애쓴다. 내가 볼 때는 그랬다. 멋있다기보다 슬펐다.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두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봄밤>을 보면서 동시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가 생각났다. 영화는 몰라도 영화 주제곡인 Sting의 Angel Eyes를 모르는 사람은 옛날엔 없었는데 지금은 있을 것 같긴 하다. 세상 쓸쓸한 그 첫 소절만 들어도 영화 속의 밴과 사라가 생각난다. 중증 알코올중독자로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고 일에서도 실패한 벤은 창녀인 사라를 만나고 사랑한다. 수환이 영경을 요양원에서 나가 술을 마시게 허락했듯 사라는 벤에게 술병을 선물한다. 20대에 이 영화를 봤을 때도 난 그럴 자신이 없었다. '너'보다 '네가 없는 세상'을 나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이기적이라도 나는 짧고 슬픈 사랑보다는 길고 심심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스포 하지 않기 위해 뭉뚱그려 말하자면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결국 그들의 사랑은 짧고 누군가는 혼자 남는다.
젠장. 내가 그랬지! 결국 그렇게 될 거라고!
이런 느낌 받아본 적 있나요
당신 혼자 내버려 두고 세상이 사라진 듯한 느낌...
이런 느낌 받아본 적 있나요
넋이 완전히 빠져나간 듯한 느낌...
Have you ever had the feeling
That the world's gone and Left you behind?
Have you ever had the feeling
That you're that close to Losing your mind?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