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칭송하는 완벽한 스타일리스트, 설터!
라는 표지의 볼드체가 눈길을 끌었다. 문단의 큰 찬사를 받고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소설가라고 하는데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책이라고 하여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스타일. 문체. 묘사.
내 소설의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소설 스터디 친구와 대화 중에 나온 얘기다. 내가 없는 것, 내가 부족한 것. 스타일. 문체. 묘사. 그게 뭘까? 스타일 있다는 작가의 글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읽은 책이었다. 애니프루의 [브로크백 마운틴]과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
10편의 단편이 있는 이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이 [어젯밤]이었다.
Last Night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잘 어울렸다. 어젯밤일 수도 마지막 밤일 수도 있었다. 시한부 암환자인 아내의 존엄사를 돕는 그 밤이 주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밤이 모두의 뜻대로 흐르지 않을 것이란 것을 우리는 안다. 어젯밤 이외의 다른 단편들 역시 치정과 배신, 인간의 욕망과 비겁함이 뱀처럼 스며들어있다.
내가 본 이 작가의 스타일은 '다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았다. 집들이에 갔는데 집주인이 분명 저기에 안방 여기에 욕실, 저리로 내려가면 지하가 나온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분명 부엌 옆에 쪽문이 하나 보이는데 거기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집주인이 안 가르쳐 주니 보여 달라고 말은 못 하고 거실에 있는 내내 자꾸 시선이 간다. 그의 책은 그랬다. 반쯤 가린 커튼 뒤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숨겨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실체를 보여준다. 씁쓸하게.
다른 나라의 글, 번역본의 한계일 수 있는데 문체의 숨은 맛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영어식 표현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의도했는지 내가 못 보는 것인지 의미 전달이 명확하지 않았다. 영어 이름이 혼란스러웠을까? 그게 누구를 말하는 거야? 그래서 테디가 누구 애를 낙태 했다는겨? 와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애니 프루의 글을 보다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의 글보다는 확실히 전달력이 좋다. 시나리오 작가여서 그런지, 대사체의 글을 볼 때 그 사람의 매력이 두 사람 간의 텐션이 훨씬 생생하다. [방콕]이 대사가 많은 소설인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지문이 많지 않은데도 대사 만으로 그들의 현재와 과거 감정의 높낮이와 갈등이 잘 드러났다. 멋진 소설이었다.
묘사는 간결했다. 해야 할 것만 담백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묘사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가장 부족한 부분인 걸까?
아.. 이 빌어먹을 자신감. 보면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왜 자꾸 들까?
책의 말미, 작가의 말에 역자와 나눈 이메일의 내용이 있다. 이야기의 탄생에 대해 작가가 얘기하는데 "존 오하라 같은 작가는 타자기 앞에 앉아 어떤 두 사람을 상상하며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그중 한 사람이 실제로 만한 내용을 쓰고 거기에 대한 답을 쓰면서 그 둘 간의 갈등을 발견해 나가는 거죠... 내 경우엔 우연에 많이 기대는 편이에요."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다시 나의 이야기를 탄생시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