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생존법 - 도안
도안스님: 지난해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올리시더니 그 집 아드님께서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올해 초에 떡을 해오시고 부처님께 크게 시주를 하셨지요. 그 댁 이외에도 올해 그렇게 시주받은 떡이 과하여 주변 불자 분들과 풍족히 나누었더랍니다. 저희 절이 누추하나마 중생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하지요. 나무관세음보살.
보살님: 맞아요. 올해 정말 떡이 흔했지. 나도 와서 여러 번 얻어먹었었잖아.
먹는 걸 유독 밝히는 보살님이 거들었다. 그럴 것이 그녀는 유독 먹을 것에 눈이 밝아 절에 있는 음식이라면 맨 쌀까지도 탐을 내었다. 그녀는 불공을 드리러 오는 것인지 절밥을 먹으러 오는 것인지 누가 봐도 후자였다. 서울대라는 말에 무리 중에 조용히 있던 김여사의 눈이 번쩍 하는 것을 느꼈다. 스님인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부티나 보이는 옷과 장신구를 치렁치렁하게 걸치고 와서 새침하게 끼어있던 그녀였다. 도안스님은 귀동냥으로 무리의 여인들에게 고3인 아이들이 있고 그중에 한 명이 유독 공부를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언제나 친구들과 절에 와서 기도를 올릴 때도, 연등에 글귀를 써 올릴 때도 아들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다. 최근에도 다른 친구들이 서로 자식에 대한 걱정과 푸념을 늘어놓을 때, 그녀만이 자식에 대한 자랑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하지만, 도안스님의 눈에는 김여사의 숨겨지지 않는 불안이 도드라져 보였다.
도안스님에게는 현재 이 절을 기도 명당으로 만들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도시의 작은 산 밑에 있는 크지 않은 절은 주변 불자들의 도움이 없이는 운영이 어려웠다. 유명하지 않은 이 절은 정말이지 근근이 운영되어 왔던 터였다. 하지만 도안스님의 치통은 아무리 욕망을 버려도 사라지지 않았고, 부처의 말씀만으로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가 참다못해 치과를 찾았을 때, 의사로 부터 어금니 4개를 모두 발치해야 한다는 청청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 그 자리에 임플란트를 해 넣어야 하는데 비용이 어마어마하였다. 스님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 만무하였고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이 절을 기도명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8월이니 곧 수능 100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능날 전이면 몇몇 불자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긴 했지만 그 뒤의 소식을 관심 있게 들었던 적은 크게 없었다. 누군가는 웃으며 돌아왔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겠지만 그것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서인지 또는 아니어서인지 스님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김여사가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스님의 옆으로 조용히 와 물었다.
김여사: 정말 이 절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잘 이루어지나요?
도안스님: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중생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지요.
김여사: 서울대... 가 맞고요? 아휴. 아니에요. 제가 무슨 말을..
도안스님: 서울대, 카이스트, 연대, 고대도 있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김여사:아휴.. 나무관세음보살.
김여사는 수능 100일 기도 현수막을 걸기도 전부터 절의 문턱이 닳도록 기도를 드리러 왔다. 그녀는 친구들도 떼어 놓고 새벽같이 와서 108배를 올렸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그녀의 기도는 더 절실해졌다. 손이나 팔, 목에 걸고 오던 장신구도 화장도 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절을 했다. 스님의 마음도 그러했다. 통증이 심한 이를 우선 발치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남은 치료도 해야 했다. 스님도 한마음 한 뜻으로 김여사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보란 듯이 서울대에 가서 절에 큰 시주를 하기를 바라였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한동안 김여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함께 오던 다른 친구들은 여전히 한 번씩 절을 찾아와 불공을 드렸지만 김여사는 아니었다. 그들의 수다 속에 김여사의 아들이 어쩌면 재수를 하게 될 것이라며 안 됐다는 것인지 잘됐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의도의 얘기를 들었다.
다행히도 도안스님의 임플란트는 의외의 인연으로 이식되고 있었다. 먹성이 유독 좋던 보살님의 남편이 동네의 유명한 치과의사였던 것이다. 수능 100일 기도 내내 절에 와서 맛있게 떡을 먹고 가던 그녀가 남편을 통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시술을 부탁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