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생존법 - 김
갑자기 100억이란 돈이 들어온 것은 IT 회사 바닐라의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불이 난 다음 날이었다.
김은 바닐라 택시 어플을 켜고 아무리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의 탓인가 하여 한동안 머리를 굴려 보아도 점 점 점 뱅글뱅글뱅글 도는 로딩 화면만 반복되는 것은 내 탓 같지 않았다. IT 기업의 데이터 센터에 화재가 나서 관련 어플들이 모두 먹통이 되었다는 것은 후에 알게 되었다. 결국 택시를 타지 못한 김은 겨우 붙은 면접에 늦고 말았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다니던 회사를 명퇴하고 주식으로 퇴직금이 반타작되고 몇 년을 산에만 다니던 김은 작년부터 자존심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사람 부릴 줄만 알았던 김이 갑자기 사회의 밑바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60대가 넘으니 경비 일도 좀처럼 자리가 없어 나이가 상관없는 배달 일을 했지만 길눈이 어두운 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사회적 기업의 실버구직 프로그램에 이력서를 내서 겨우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와 가게 된 면접이었다. 하지만 면접에 참여조차 하지 못한 그날, 도저히 집으로 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집 앞 편의점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김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 집 소파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다음날 핸드폰 배너 알람에 눈을 떴을 때, 거기에는 0이 10개에 1이 하나. 바닐라 전자지갑에 백억이 입금되어 있었다. 김은 자신의 눈을 비비고 뺨을 후려쳤다. 백억이 맞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우선 돈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빨리 옮겨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옮겨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자꾸 새 나왔다.
김은 바닐라 지갑에 있는 돈을 다른 은행으로 이체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자꾸만 랙이 걸려 어플이 열리지도 않았다. 등에서 땀이 났다. 이미 내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미칠 것 같았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 자신의 100억을 돌려 달라는 전화인가 하여 김은 받지 않았다. 이 돈이면 주식으로 잃은 퇴직금도 채워 넣을 수 있고 한강뷰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몰고 골프나 치며 지낼 수 있다. 그러려면 이 돈을 빨리 옮겨야 한다. 하지만 돈은 어떻게 해도 옮겨지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나을 것 같아 김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은 게임을 좋아해서 학교 다니는 내내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만 하다가 지방의 이름도 모르는 대학에서 게임전공을 하고는 졸업 후 그 지역의 택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 성민아, 출근했냐? 지금 뭐 해?
- 집.
- 야 잘 들어.
- 뭘?
- 야, 지금 내 바닐라 계좌로 100억이 들어왔어. 100억.
- 얼마? 그게 왜 들어와?
- 몰라 어제 바닐라 먹통 되고 그랬던 거 알지? 그러더니 오늘 이렇게 돈이 들어왔다고. 이걸 어떡하지?
- 도대체 무슨 얘기야? 눈먼 돈이 들어왔다는 거야?
- 그래. 근데 이게 이체가 안 돼. 어떻게 뽑지?
- 아빠, 진정하고 뭐라고 나오는지 캡처해서 좀 보내봐.
김은 알림 문자를 캡처해서 아들에게 보냈다.
- 어휴.. 아빠. 이거 사이버 머니 들어왔다는 거잖아. 아빠 핸드폰 게임해?
아들의 말을 듣고 알림을 다시 확인했다. 0이 10개에 1이 한 개. 백억이었다. 바닐라 지갑이 아니라 바닐라 게임 알람이었다. 100억은 게임 이벤트에 당첨되어 들어온 사이버 머니였다. 김은 온몸에 힘이 딱 풀렸다. 내 돈을 훔쳐갈까 받지 않았던 전화를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 여보세요. 000-000-0000으로 전화하셨나요?
- 네. 저희는 00 산업인데요. 실버채용 박람회에서 이력서 주고 가셨지요?
- 네. 맞습니다.
- 혹시 내일 00시까지 면접 보러 올 수 있으세요?
- 네 물론이에요. 감사합니다!
김은 바닐라 게임 어플을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