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상 생존법 - 고요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제트기류를 꽉 묶어 주던 찬 공기가 느슨해지면서 세계 곳곳에 유래 없던 한파가 몰아닥쳤다. 아무리 겨울이지만, 이렇게 까지 추운 것은 반칙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 길 없는 고요는 당황스러운 추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나방처럼 따뜻한 온기가 드는 곳을 마치 빛의 중앙인 것처럼 본능적으로 찾아갔다. 세상이 왜 이렇게 예측할 수 없게 변해 버리는 것인지 고요가 알 길이 없었다. 피해야 할지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인간들처럼 세상은 포근했다 삭막해지고, 또 금세 얼어붙어 버렸다. 어제까지 고요가 몸을 웅크리고 있던 숲 풀 속에 숨겨진 박스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 박스를 호시탐탐 노리던 사나운 수컷 고양이가 들어앉아 있었다. 고요가 젊고 힘이 있던 때는 어느 고양이도 고요의 영역을 쉽게 노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고요가 겨우 찾아놓은 보금자리마다 힘으로 밀고 들어와 하악 거리는 녀석들이 생겼고, 고요는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영역에서 밀려났다.
멀리 가기에는 너무 추웠다. 몇몇 착한 인간들이 주는 밥과 물도 몇 시간 만에 꽁꽁 얼어버렸고, 그나마도 고요보다 힘이 센 다른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어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나마 쥐들조차 너무 추워 땅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고요는 휘청 거리며 다시 지친 몸을 쉴 곳을 찾아야 했다. 커다란 고철덩어리 밑은 잠시 잠깐 따뜻한 온기가 있었지만, 이전에도 그 아래 있다가 고요는 한동안 다리를 절름거리며 다녀야 했다. 그때 이후로는 아무리 추울 때도 움직이는 고철덩어리 밑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추웠다.
도무지 갈 곳이 없던 고요는 사나운 고철덩어리와 인간들이 가득 모여 있는 굴속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어 들어가지만, 고요의 신경은 잔뜩 날카로워지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적에 대한 두려움이 꼬리 끝까지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끼이이이이익!
고요는 화들짝 놀라 고철덩어리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무서운 소리는 잠깐 멈췄다 또 들리고, 그러다 또 멈췄다. 인간들의 굴속은 숲 속보다는 훨씬 따뜻했다. 털 한 올 한 올을 곤두서게 하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렸지만, 계속 듣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고요는 자신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 고요의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고요의 주변에서 뒹굴며 놀았다. 고요는 어렵게 잡아온 쥐의 몸통을 새끼들에게 주었다. 고요의 배도 고팠지만, 그때는 왠지 새끼들에게 밥을 주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고 나면 안심이 되었다. 고요처럼 검은색과 흰색, 옅은 갈색이 섞여 있는 새끼도 있고, 흰색에 각기 다른 검정 얼룩이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새끼들이 고요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고요는 새끼들을 다시 입으로 물어왔다. 그런 고요와 고요의 새끼들을 바라보는 인간이 있었다. 새끼들에게 먹이를 양보하고 허기진 자신에게 먹이와 물을 주었다. 그 인간의 냄새를 기억했고, 함께 오는 맛있는 먹이에 절로 침이 고였다. 인간은 자신을 ‘고요야, 고요야’라고 불렀다. 따뜻했고, 화사한 봄날이었다.
하아악! 하아악!
고요가 너무 방심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이 구역을 차지하고 있던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등을 있는 힘껏 구부리고 하악 거리며 고요를 위협했다. 고요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고 도망갈 힘도 없었다. 하지만 검정고양이의 위협은 거셌고 잔뜩 겁먹은 고요를 공격해 왔다. 고요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부풀리고 하악 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자신도 더 이상이 이 싸움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검정고양이를 피해 어디로든 달려가야 했다. 고요의 뒤로는 고철덩어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사납게 고요를 덮쳤다. 그 소리에 검정고양이도 잠시 몸을 움츠려 피했다. 인간들의 냄새와 소리, 땅을 울리는 발자국이 정신없이 사방에서 들렸다. 인간들의 소리는 검정고양이를 향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요는 인간들이 들어가는 문이 잠시 열린 틈을 타 계단을 타고 올랐다.
인간들의 소리도, 고철덩어리의 소리도, 검은 고양이도 점점 멀어졌다.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요의 눈이 번쩍일 정도의 빛이 켜졌다가 또 사라졌다. 고요는 너무나 두려웠다. 이곳은 숲도 없고 흙도 없었다. 모든 소음에서 멀어지자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와 목마름이 밀려들었다. 이제 더는 올라갈 힘도 없었다. 고요는 구석에 쌓여진 종이 더미가 들어있는 박스 안으로 자신의 지친 몸을 겨우 숨겼다. 고요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시 해가 뜨고 지고 또 뜨고 졌다.